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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희망과 위안의 아이돌

SWEV 2017.07.24 14:27

얼굴이 예뻐야 한다. 몸매도 좋아야 한다. 아름답게 춤추면서 노래를 잘 부를 수 있어야 하고 지쳐도 웃으면서 나를 반겨주어야 하며, 가끔 날 크게 웃게 해줄 수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남자와 썸 비슷한 느낌이 들게 친하게 지내서도 안된다. 이게 요즘의 걸그룹에게 대중들이 요구하는 여러가지 '재능'들이다.


써놓기만 해도 참 숨이 막힐 정도로 바라는게 많다 싶은데, 오늘날의 걸그룹과 팬들은 상상연애로 연결 되어 있기에 이런 식의 무리한 요구가 흔하게 보이곤 한다. 요구하는 대로 해주지 않으면 만화까지 그려가면서 탈덕하겠다는 사람이 나오고, 웃겨야 할 자리에서 웃기지 못하면 무례하다며 욕을 먹기도 한다. 나는 대중들이 아이돌 멤버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을 굉장히 자주 한다. 초아의 AOA 탈퇴를 보면서 그 가혹함을 견디지 못한 것이 아닐까 라는 의문을 품기도 했다.



이런 가혹한 연예계에서, 아이린은 요즘 굉장히 보기 드문 방식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냈다. 같은 팀의 막내 멤버보다도 예능감이 없고 낯가림이 심해서 최근의 리얼 예능에 밀어넣기도 곤란하다. 아이린보다 춤과 노래가 뛰어난 걸그룹 멤버는 다른 팀에서도 찾아보기 어렵지 않고, 초아처럼 노력의 아이콘인 사람 조차도 견디지 못하고 팀을 탈퇴하는 시대이다. 그러나 그녀는 무대 위에서 반짝반짝 빛이 난다. 오로지 무대 위에서만 빛이 날 뿐이고 다른 곳에선 그냥 예쁜 동네 쫄보 누나 수준일 뿐이지만, 사람들은 그런 것 따위 신경쓰지 않는다. 원래 그렇다고 쉽게 받아들이고 넘어간다. 걸그룹들에게 더 엄격한 여자들조차도 이 친구에게 큰 비호감은 없다.


이렇게 스테이지에만 특화된 아이돌은 정말 찾기 힘들다. 카메라 앞과 뒤를 가리지 않고 무대 밖에선 목소리 한 번 크게 못내는 이 소심한 친구가 중소규모 기획사도 아니고 업계 1위의 SM 소속, 그것도 플래그쉽 역할을 하는 그룹의 맏언니라는 점이 사람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다는 생각을 나는 한다. 스테이지 밖에서 큰 활약이 없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그녀를 본분에 가장 충실한 아이돌로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노력 보단 재능이, 그것도 여러 방면의 재능이 골고루 요구되는 연예계에서 좋은 무대를 꾸며야 한다는 가수의 본분에만 충실한 그녀의 존재가 주는 위안과 희망은 굉장히 각별하다.


레드벨벳의 음악은 내 취향과 조금 거리가 있다. 도상학 매니아가 찍었나 싶은 뮤직비디오는 나에게 너무 어려운 매체이고 사람들에게 칭송받는 아이린의 외모마저도 내가 좋아하는 여자의 외모 조건 몇 가지와는 거리가 꽤 있는 편이다. 그러나 나는 이 사람을 응원한다.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 친구가 잘 되어서 소심하고 순진하지만 열정과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도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다면 행복할 수 있다는 희망과 위안을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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