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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 GPU 솔루션의 역사

SWEV 2015. 1. 18. 08:38

멀티 GPU의 시작점, 부두의 SLI

△ 부두의 마지막 전성기를 이끌었던 부두 2

 

지금은 그 이름마저도 희미해져가는 회사이지만 한 15년쯤 전에 최고의 '3D가속 카드'를 꼽으라면 무조건 3Dfx사의 Voodoo시리즈였다. '그래픽 카드'가 아니라 '3D 가속 카드'라는 이름인 것은, 오늘날엔 한 개의 그래픽카드가 2D와 3D화면 모두를 담당하지만 저 시절만 하더라도 2D화면 출력을 위한 카드와 3D에서 가속을 담당하는 카드를 따로 꽂아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단 한 개의 그래픽카드로 2D와 3D 모두를 지원하기 시작한건 조금 나중의 일이다. 제목엔 멀티 GPU라고 써있지만 실질적으로 부두는 GPU, 즉 Graphic Processing Unit 이라기 보단 단순한 가속장치에 불가했으니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멀티 GPU도 멀티 VGA도 아닌 셈.

 

△ 부두의 SLI는 이런 식으로 작동했다.

 

부두 2에 오니 상황이 약간 달라졌다. 메인보드에 PCI 슬롯이 여러 개 있는 것은 예전과 같았지만, 그래픽카드를 위해 별도의 전용 슬롯인 AGP 슬롯이란게 생겨버린 것이다. 당시만 해도 그게 별달리 문제가 될 이유가 없었는데 위에서 이야기 했듯이 별도의 그래픽카드를 통해 화면을 뽑아내고, 부두2는 단순히 연산장치 역할만 해내면 되었기 때문이다. AGP 슬롯은 하나지만 PCI 슬롯은 아무리 적어도 3개는 있었기에 본체 하나에 가속 카드를 두 장씩 꽂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기술에 3Dfx는 'SLI'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별 상관 없는 이야기이지만, 반도체 기술이 그땐 지금 같지 않다보니 요즘이라면 1개의 칩으로 해결 될만한 많은 것들이 저 당시엔 별도의 칩으로 기판에 납땜되어 있다. 그 어디에도 냉각팬이나 히트파이프는 커녕 흔해빠진 방열판 하나 없는 것도 지금 보면 신기한 일. 요즘의 그래픽카드는 다들 무기로 써도 될만큼 크고 무겁게 나오기에 더욱 그렇다.

 

 

AGP 슬롯 그래픽카드의 발전 - 멀티 GPU 시장의 암흑기

△ 요즘엔 이런 초록기판 메인보드도 드물다

 

위에서 이야기 했듯이, AGP 슬롯은 어떤 메인보드에도 1개만 달려 있었지만 처음엔 별 탈이 없었다. 어차피 3D 연산만을 담당할 부두 같은 가속기는 PCI 슬롯을 이용했기에 AGP 슬롯이 모자랄 일은 없었으니까. 그 때 당시에 3D 가속기는 부두 2 정도 말고는 살만한 물건이 없었고 그나마도 대중적으로 잘 팔리는 물건이 아니라 일부 하드코어 게이머들이나 사다가 쓰는 수준이었으니 저 문제는 전혀 걱정할 꺼리가 못되었다. 적어도 부두 2 시절 까지는 그러했다.

 

그러나 반도체 기술이 발전하며 그래픽카드 하나로 2D/3D 연산을 모두 처리할 수 있게 되면서 문제가 생겨버렸다. 예전처럼 별도의 카드를 꽂아가면서 돈을 들이지 않고도 3D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것 까진 좋았는데, 정작 AGP 슬롯이 한 개 뿐이다보니 예전처럼 카드를 두 세장씩 꽂아서 성능을 늘릴 방법이 사라진 것이다. 그러다보니 제조사들은 1장의 그래픽 카드에 두 개 이상의 그래픽 칩셋을 꽂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 생긴 것 만큼 그렇게 빠르진 않았다.

 

AGP 시절, 첫 번째로 출시된 듀얼 GPU 카드는 ATI의 Rage Fury MAXX였다. 두 개의 Rage Fury 칩셋이 장착되어 있는데 냉각팬이 붙어 있긴 했지만 열이 그렇게 많이 나는 물건은 아니다보니 지금처럼 생긴게 요란하진 않다. AGP 슬롯은 최대 25W까지 전력을 공급할 수 있었고 저 정도 수준의 발열이라면 팬 없이 방열판만 붙어 있어도 충분히 식혀줄 수 있다. 나름 ATI의 야심작이었지만 생긴 것 만큼 성능이 좋지가 못해서 욕만 먹은 실패작이 되었다.

 

△ 3Dfx의 마지막 GPU, VSA-100

 

3Dfx는 부두 2를 만들 때 까지만 해도 참 잘나갔는데, 그 이후로는 영 재미를 못봤다. 3D 가속 카드였던 부두 2 시절에는 잘 나가다가 정작 완전한 3D 가속 그래픽 카드인 부두 3를 가지고 바보짓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부두 2 까지만 해도 3Dfx는 자체적으로는 부두칩만 공급하고 다른 제조사들이 그래픽카드를 만들도록 냅뒀는데, 부두 3를 내놓으면서는 스스로 카드를 만들어서 팔았다. 당연히 가격이 치솟았고, 가격 만큼 성능이 나오지 않았던 부두 3 시리즈는 처참하게 시장에서 박살났다.

 

그 와중에 후발주자였던 nVidia가 리바 TNT2 시리즈를 내놓으며 인기를 끌다보니 3Dfx는 이참에 확실하게 다른 제조사들을 찍어누르고 우리가 왕좌를 되찾아오자 라는 생각으로 미친짓을 계획한다. VSA-100이라는 칩셋을 개발하며 1개만 달아놓으면 부두 4 4500, 2개면 부두5 5500, 4개면 부두 5 6000으로 출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 3Dfx의 광기, 부두5 6000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AGP 슬롯은 25W까지 밖에 전력을 공급하지 못하는데 4개의 VSA 100 칩을 달아두니 25W는 택도 없게 모자랐다. 결국 플래그쉽 카드인 부두 5 6000에서는 위에서처럼 AC 어댑터를 따로 주는 계획도 잡혀있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몰라도 어른의 사정에 의해서 부두 5 6000은 시장에 출시되지 못했고 3Dfx는 nVidia에 인수당하며 부두 시리즈는 멸종되고 만다.

 

결론적으로, AGP슬롯이 기본 VGA 슬롯이던 시절엔 도통 제대로 된 멀티 GPU솔루션이란게 없었다. 그나마 몇 개 되지도 않았고 나온 것 마다 망작이었으니까.

 

 

PCI-Express의 등장  

△ 지금은 7개의 슬롯이 모두 PCI-E 16배속 슬롯인 메인보드도 흔하다.

 

2.13GB/s짜리 AGP 8배속 슬롯으로도 그래픽카드들의 성능을 제대로 받쳐주지 못하게 되자 PCI-Express라는 새로운 슬롯 규격이 등장한다. PCI-E 슬롯은 특이하게도 슬롯의 길이에 따라 배속이 정해져 있는데, 가장 높은 배속인 16배속의 경우 최대 8GB/s라는 대역폭을 가지고 있어 기하급수적으로 커져가는 그래픽 데이터의 처리에 좀 더 숨통이 트이게 되었다. 16배속 슬롯 기준으로 요즘의 표준인 PCI-E 3.0 에서는 속도가 4배로 향상되어 32GB/s라는 대역폭이 나온다.

 

더불어 PCI-E 슬롯은 슬롯당 공급 가능 전력도 크게 증가하여 1.0 버전은 16배속 기준으로 최대 75W, 2.0에선 150W까지 가능하다. 저 150W라는 최대 공급 가능 전력이 되게 중요한데, 150W면 시중에 나와있는 거의 대부분의 그래픽카드들을 굴릴 수 있는 전력량이다. GTS 450이나 GTX 650등등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는 그래픽카드를 돌릴 수 있는 전력이다 보니 PCI-E 2.0 규격이 보급되면 어지간한 그래픽카드들은 별도의 보조전원 커넥터 없이 쓸 수 있을 것 같아 기대했다. 그런데 PCI-E 3.0 규격이 보급화 되어가고 있는 이 와중에도 대다수의 VGA 제조사들은 150W 미만의 그래픽카드도 PCI-E 1.0 메인보드와의 호환성을 위해 별도의 보조전원을 쓴다. 이건 조금 아쉽다. 처음부터 좀 넉넉하게 규격이 잡혔으면 좋았을 것을....

 

사진에서 처럼 PCI-E 슬롯은 그래픽카드와 그 외 기타 확장카드들(S-ATA 컨트롤러, 사운드카드 등등)을 가리지 않고 모두 꽂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길이는 달라도 전부 같은 모양의 슬롯이니까. 그리하여 다시금 멀티 GPU솔루션이 눈을 뜨게 되는데 그 첫 번째 타자는.....

 

 

SLI의 부활, 지포스 6시리즈

 

△ 그때는 정말 최고였는데....

 

엔비디아는 3Dfx를 인수하며 그들의 기술 중 하나인 SLI를 지포스 6시리즈에서 부활시킨다. 지포스는 5시리즈까지는 AGP 인터페이스로 나왔으며 6시리즈부터 PCI-E를 지원했는데, 간혹가다가 보면 애초에 AGP용으로 설계가 된 물건을 PCI-E용으로 바꾼 티가 좀 나는 애들이 있곤 했었다. 특히 6600GT가 변환용 브릿지 칩셋을 붙여서 많이 출시된 편.

 

사진속의 그래픽카드는 지포스 6800 울트라이며 SLI브릿지로 묶여서 쌍으로 작동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과거의 SLI 브릿지는 케이블 형태였는데 새로 부활한 SLI는 PCB 기판 형태로 바뀐 점이 눈에 띈다. 엔비디아로서는 처음 시도한 멀티 GPU솔루션이지만 그 당시로선 획기적인 성능이었고 싱글 그래픽카드 대비 1.6배 정도 빨라서 게이머들에게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으며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거기에 저 시절의 표준 CPU였던 인텔의 펜티엄 4 후기형 제품들이 워낙 전기도 많이 먹고 쿨러도 시끄러웠던 덕에 대용량 파워 서플라이가 보급되고 냉각 성능이 좋은 케이스들도 시장에 많았다. 여러모로 예전에 비해 멀티 GPU를 꾸미기 좋았던 희망적인 시대라고나 할까.

 

 

ATI의 반격 CrossFire

△ 뭐가 이리 복잡한지 원..

 

엔비디아의 SLI에 맞서기 위해 ATI도 당시 그럭저럭 나름의 팬을 확보하고 있던 라데온에 크로스파이어라는 멀티 GPU 기능을 넣게 된다. 하지만 대충 같은 칩셋에 클럭만 맞아도 작동했던 엔비디아의 SLI와는 달리, 크로스파이어 에디션이라는 별도의 카드를 달아주고는 그것도 모자라 이상한 케이블링까지 해야 하는 통에 욕을 많이 먹었다. 여러모로 미완성의 느낌이 강하게 묻어나는 모습이랄까. 당시 크로스파이어 에디션이라는 딱지를 달고 나왔던 카드들이 죄다 일반용 카드들 보다 비싸게 팔린데다가 국내에 얼마 수입이 되지도 않았던 탓에 결국 뭐 하나 제대로 해본 것도 없이 순식간에 묻혀버린 불쌍한 기술.

 

 △ 크로스파이어 X에서는 너절한 케이블링은 사라지고 간단한 브릿지만 남았다.

 

그리고 ATI는 이 실패를 발판삼아 오늘날의 형태인 크로스파이어 X라는 솔루션을 개발한다. 경쟁사의 제품군들 처럼 동일한 카드 두장과 브릿지만 있으면 CF가 가능하도록 개선된 것. nVidia 제품과는 약간 다른 방식으로 작동했지만 결과적으로 크로스파이어도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듀얼 GPU 그래픽카드의 재등장

 

△ 복층형 그래픽 카드라니....


부두5 시리즈와 레이지 퓨리 맥스가 개운하게 망한 이후 단일 그래픽카드에서 2개의 GPU를 가진 물건은 한동안 나온 적이 없다. 그러다가 지포스 7시리즈에서 엔비디아는 7950GX2라는 해괴망측한 물건을 내놓는데, 크기와 모양 모두 워낙 예전의 물건들과는 달랐기에 너나 할 것 없이 큰 충격을 받았다. 


 
드라마에 나오는 2층집은 참 좋아뵈지만 아무나 살 수 없을 만큼 비싸다. 마찬가지로 이 그래픽 카드도 무지하게 비쌌다. 어이 없을 만큼 비쌌지만 내부적으로 연결 된 2개의 카드가 아주 좋은 성능을 뽑아내면서 듀얼 GPU 그래픽카드 중 처음으로 소비자들에게 좋은 소릴 들었던 역사적인 제품이기도 하다.

 

△ 지금봐도 되게 예쁘다


지포스 8시리즈땐 듀얼 GPU 그래픽카드가 없다가 8시리즈의 재탕이라고 욕먹던 9시리즈에 와서야 엔비디아는 또다른 듀얼 GPU 그래픽카드를 내놓는데 그 이름하야 9800GX2. 까보면 두개의 그래픽카드가 샌드위치처럼 마주보고 있고 그 가운데에 쿨러가 들어있는데, 역시나 예전엔 아무도 본 적이 없는 구조이다 보니 소비자들도 매우 신기해 했다. 엄청나게 뜨겁고 엄청나게 전기도 많이 먹었지만 반대로 엄청나게 빨라서 그럭저럭 욕은 먹지 않았던 물건이기도 하다. 그리고 9800GX2의 후속 모델인 GTX295도 저런 형태의 샌드위치형 구조로 출시 되었다가 1장의 기판을 사용하는 신형이 나오기도 했었다.

 

별 관계 없는 이야기지만, 여지껏 본 수많은 그래픽 카드들 중에서 가장 예쁘다 느꼈던 디자인이다. 네모 반듯한 모양도 그렇고 딱 봐도 요란하지 않으면서 묵직해 보이는 게 참 마음에 든다. 저런 모양의 카드가 나오면 하나쯤 사볼 것 같은데 갈수록 그래픽 카드들이 쓸데없이 너저분해져서 좀 아쉽다.

 

△ 쿨러가 참 예뻤던 라데온 4870X2

 

ATI도 마냥 놀고 있지는 않았는데, 라데온 3870을 듀얼로 묶어 3870X2라는 물건을 내놓았다. 2개의 그래픽 칩셋이 한 개의 기판 위에 일자로 놓여있고 하나의 블로워팬이 두 카드의 쿨러를 일직선으로 식혀주는 형태였는데, 두 개의 칩셋 온도 차이가 커서 그걸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래도 9800GX2와 마찬가지로 ATI의 플래그쉽으로서 얼굴마담 역할은 충분히 했고, 후속작인 라데온 4870X2 같은 물건도 똑같은 구조를 그대로 써서 출시되었으니 의미가 없는 물건은 아니다.

 

 

오늘날의 멀티 GPU

 

△ 이젠 AMD가 되어버린 ATI의 플래그쉽, 라데온 295X2.

 

AMD는 발전된 크로스파이어 기술을 이용해서 295X2 같은 괴물을 만들어냈다. 혼자서만 최대 600W를 먹어대는 덕분에 미친 물건 소리를 들을 만도 한데, 부두 5 시절과는 다르게 소비자들 모두 이젠 저 정도는 껄껄 웃으며 받아준다. GTX 480처럼 300W씩 먹어대는 그래픽 카드가 이미 3~4년 전부터 나와 있었으니 600W라는 숫자가 이젠 충격적이지 않은 덕도 있을테고, 케이스가 식혀줄 수 있는 한계와 파워 서플라이가 뽑아줄 수 있는 한계도 이미 몇 년 전에 저 정도는 여유롭게 받아줄 수 있을만큼 발전한 덕도 있다. 처음 등장했을 때 대충 1.5~1.6배 정도나 나왔던 멀티 GPU의 성능이 요즘엔 정확하게 2배에 가깝게 뽑혀 나온다. 크로스파이어를 위해 별도의 브릿지를 달지 않아도 되는 것도 요즘 들어 생긴 변화 중 하나이다. 이제 멀티 GPU 기술은 거의 완전히 무르익었다 해도 틀리지 않다.

 

다만 저 정도로 비싸고 뜨거운 물건을 굳이 써야만 할만큼 게임이 재밌는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좋은 그래픽 카드를 보면 탐은 나는데 그걸로 뭘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는 그런 상황. 언젠간 나도 저런 거 한 번 쯤은 써보고 싶은데 지금 GTX 970을 쓰면서도 내가 쓰기엔 너무 쓸데없이 빠르지 않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지금 같아선 영영 저런 물건 만질 일이 없을 것 같아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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