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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제일 쓸데없이 느껴졌던 일

SWEV 2015. 12. 8. 04:27

 

 


군대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 제일 병신 같은 것은 저녁 점호다. 우리 부대는 밤 9시가 되면 저녁 청소를 시작했다. 아침에 밥먹고 와서 청소하고, 점심먹고 와서 또 청소하고, 저녁먹고 자기전에 또 청소를 한다. 이것도 솔직히 병신같고 쓸모없다고 느껴지지만, 전차부대 특성상 먼지가 많아서[각주:1] 하루에 두 번 정도는 청소해주는게 낫다는 생각도 가끔 들 때가 있다.


그런데 9시에 청소 시작해서 청소 마치고 옷 갈아입고, 전투화까지 닦으려면 항상 시간이 빠듯하다. 9시 30분에 청소 마치고 저녁점호 시작하면 한여름엔 땀이 다시 줄줄 흐른다. 청소시간에 미친듯이 뛰어야 하니까. 점호 시간도 유쾌하지 않다. 당직사관의 기분이 별로라거나 인근 부대에서 대형사고가 터졌다거나 등등 뭐 여러가지 이유로 저녁 점호는 분위기가 참 험악하다. 즐거운 일들로 릴렉스하면서 잠들어도 시원찮을 판에 잠들기 전까지 짜증이 치솟은 상태에서 침상에 누우면 잘도 잠이 오겠다. 군생활 하는 2년 내내 휴가기간을 빼고는 단 하루도 꿈을 꾸지 않은 날이 없었다. 제대로 숙면을 취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결국 다음날 하루종일 피곤하고 지친 몸으로 일을 한다.

 

△ 행복한 군생활이란 없다. 행복한 감옥생활이란게 있겠나.

이런 바보같은 문화와 관행이 고쳐질 것 같지 않다는게 더 절망이다. 2년 군생활 끝나면 대부분의 예비역들은 그 시절의 악폐습을 고치길 포기하니까. 지속적으로 문제삼고 개선을 건의 해야 하는데, 남일이라 생각하고 잊어버린다. 당연히 나아질리가 없다. 군 내부에서의 목소리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이미 징병제라는 거대한 폭력이 장병들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에 점호같이 사소하다면 사소한 문제는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는다. 원치않게 끌려와서 죽을똥 살똥 하는 마당에 제도를 고치려고 애쓸 방법 찾을 힘 따위가 어디에 있겠는가.


국방부에서는 저녁점호 시간 이후가 즐거워지도록 뭐 감사편지 같은 걸 방송한다고 홍보하던데, 치료보다 예방이 우선인 걸 가르쳐줘야 아나 싶어서 답답하다. 자기전엔 그냥 인원체크만 하고 끝낼 생각을 도대체 왜 못하는 걸까. 화내고 욕한다고 있지도 않은 애국심이 생겨나거나 전투의지가 샘솟지는 않는다. 감옥에 끌려간 죄수들만도 못한 취급을 하면서 도대체 뭐 이리 바라는게 많나. 기껏 없앴던 저녁점호를 전투형 군대니 뭐니 하면서 2008년도에 기어이 다시 부활 시켰는데 저녁에 인원수 체크하면서 괴롭혀대면 없던 전투력이 잘도 생겨나겠다.

 

블로그에 순수한 분노의 욕설 포스팅은 어지간하면 없길 바랐는데, 군생활 나름대로 좋은 부대에서 좋은 사람들과 했다고 생각하는 나조차도 이모양이다. 나보다 군생활이 훨씬 더 힘들고 개같았던 사람들이 수백만명은 될 것이다. 전쟁 나봐라. 대한민국 전사자의 절반 이상은 상관 살해일 것이다. 당신이 능력있는 용장이라 한들 소용없다. 장비는 싸움을 못해 죽은 것이 아니니까. 계급이 높아도 안심하지 마라. 장비는 군주인 유비의 동생이었고, 지금의 4성장군 즈음인 위치였다. 예외란 없다. 당신이 생각없이 군을 지휘하고 있다면 말이다 이 씨발것들아.

  1. 전차부대는 전차의 무한궤도가 부대 안의 모든 흙과 모래를 아주 곱게 빻아놓기 때문에 미세한 먼지나 흙이 미친듯이 많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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