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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물건에도 마음이 있다면

SWEV 2016. 4. 9. 00:37


이따끔 그런 생각을 한다. 물건에도 마음이 있다면 스스로가 자랑스러울 물건은 과연 몇이나 될까. 집 앞에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가 낡은 침대 매트리스가 버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가만히 보니 매트리스라고 할 수도 없는 정도의 물건이다. 나무 판때기 밑에 각목을 대어서 두께를 약간 늘린 뒤 1cm도 안되는 스폰지를 바르고 그 위에 껍데기만 씌워놓은 상태. 철제 코일 스프링으로 만들어진 보통의 침대 매트리스도 아니었고 하다못해 군대에서 나눠주는 두께 5cm짜리 두꺼운 스폰지로 채워진 매트리스도 아니었다.


그냥 나무 판자나 다름 없는 물건에 최고급 침대라는 말을 한 두번도 아니고 수십번 반복해서 새겨놓았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 이 글을 쓴 나, 이 물건을 만든 회사의 사람들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저 아이는 절대로 최고급 침대가 아니다. 그런데 굳이 써붙여 놓았다. 그 모습이 애처롭고 부끄럽다. 저렇게 허세라도 부려놓지 않으면 그 무엇도 없을 것 같은 저 친구의 존재 가치가 참으로 뼈아팠다. 물건이 스스로 생각하는 인격이 있다면, 저런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창피하게 느껴졌을 것 같아 서글프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 이제는 저런식으로 무작정 우기는 일은 많이 줄었다. 다행스런 일이지만 아직도 전단지나 광고 경품 이미지엔 고급 우산, 고급 커피잔 세트 같은 단어들이 낯뜨겁게 오르내린다. 고급이란 단어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저 싸구려 판때기에 들어간 스폰지 두께 만큼이나 얄팍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급이 아니면 뭐 어떤가.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만큼의 역할을 다 해주면 그만일 뿐이다. 물건을 살 때 조금 더 생각하고 조심해야겠다. 보잘것 없음을 숨기기 위해 허영으로 스스로를 포장한 모습에 슬픔을 느끼고 싶지는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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