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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P란 무엇인가

SWEV 2016.06.23 10:11

CPU나 VGA처럼 전기를 많이 먹는 반도체 부품들은 스펙에 항상 TDP라는 수치가 따라붙는데, 잘 와 닿는 개념이 아니다 보니 헷갈려 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 쓴다. TDP라는 말은 Thermal Design Power의 줄임말이다. 한국말로 번역하면 '열 설계 전력' 정도가 되겠다. 한국말로 번역해도 썩 매끈한 느낌이 없다. 뭐 공학 용어가 흔히들 그러하니까 이제와서 문제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전공서적을 보아도 빛알[각주:1] 같은 단어가 튀어나오는데 '열 설계 전력' 정도야 애교 수준이지 않나.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기초를 알아야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으니 짧게나마 설명을 하면서 시작한다.


△ 호스의 물줄기는 언제나 수도꼭지만큼 세차지 않다.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시원스럽게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호스에 연결 해서 물을 뿌려보면, 수도꼭지만큼 힘차게 물이 나오지는 않는다. 물줄기가 호스를 지나가며 압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물이 그냥 틀면 나오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호스 안쪽의 벽을 열심히 긁으면서 힘들게 꾸역꾸역 나온다는 것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전기로 작동하는 기계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호스 안의 물줄기처럼 전기의 흐름도 전선 안쪽을 열심히 긁어가며 꾸역꾸역 나온다. 전선이 호스처럼 속이 비어있는 물질은 아니지만, 어쨌든 안쪽에서 무언가에 부딪혀가며 흐름이 약해진다는 개념만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현상을 보통 물리학에서는 '도선의 내부 저항'이라고 표현한다.[각주:2]


물이 호스 안쪽을 긁으면서 마찰열이 나지만 물 자체가 호스와 물 사이의 마찰면을 식혀주기에 우리는 호스에서 열이 나는 모습을 볼 일이 없다. 그러나 전류가 전선 안쪽을 지나갈 때는 딱히 식혀줄만한 무언가가 없기 때문에 그 열이 고스란히 외부로 쏟아져 나온다. 이 열을 '줄 열'[각주:3]이라고 말하며 전류가 흐르는 모든 지점엔 줄 열이 발생한다. 컴퓨터나 선풍기 같은 '장치'만을 생각할 수 없다. 당신이 쓰는 멀티탭, 멀티탭을 꽂는 콘센트, 콘센트가 연결된 집 안쪽의 전선 모든 지점 곳곳에서 줄 열은 발생한다. 다만 그 양이 그렇게 많지 않아 몸으로 느낄 일이 없을 뿐이다. 호스를 흐르는 물의 마찰열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 반도체의 내부 사진. 안쪽의 가느다란 선처럼 보이는 것들이 모두 도선이다.

반도체나 전기회로는 무수히 많은 도선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당연히 반도체도 작동중엔 열을 내뿜는다. 그리고 좁은 면적에서 열이 많이 나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잘 돌아가게 만들려면 무언가로 식혀주어야만 할 때가 있다. 당신의 PC에 방열판이나 냉각팬이 붙어 있는 이유가 바로 그래서다.


△ 이 히터의 TDP는 1200W이다.

자, 이제서야 TDP의 정의를 제대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준비가 됐다. TDP는 전류가 흐르는 장치에서 생겨나는 열의 양을 W(Watt)단위로 측정하여 적어둔 것이다. W가 에너지나 열의 단위가 되는 것은 히터나 다리미를 통해 흔히 보았을 것이다. 위의 사진에도 저 히터가 초당 1200W 만큼의 열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분명히 앞에서 전류가 흐르는 모든 '지점'에서 열이 난다고 이야기 했는데, TDP는 전류가 흐르는 '장치'에서 나는 열만을 이야기 하니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별 거 아니고, 아까 설명한 것 처럼 전선에서 발생하는 열은 보통 무시해도 될 만큼 작은 값이기 때문이다.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열이 많이 나거나 전선을 강제로 식혀주어야 할만한 극한 환경에서는 또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 줄 수도 있겠지만 살면서 그런 걸 볼 일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_-. 일단 나는 아직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 인텔의 플래그쉽 CPU인 제온 E7-8890 v4의 스펙 데이터. 가운데 즈음에 TDP 수치가 적혀있다.

TDP를 에너지의 표준 단위인 W로 표시하다보니, TDP와 소모전력을 헷갈려 하는 사람이 종종 나온다. 분명히 말하는데, TDP와 소모전력은 절대 같지 않다. 그러나 소모전력과 아주 큰 관계가 있기는 하다. 반도체는 내부적으로 전력을 끌어다 쓰면서 에너지를 소모하는 부분이 딱히 없다. PC에서 하드디스크나 쿨링팬 처럼 모터가 달린 물건들은 전기 에너지를 회전 에너지로 바꾸어 쓰면서 에너지를 소비하지만, 반도체는 딱히 내부에서 무언가 에너지를 소모하며 움직이는 부분이 없다는 뜻. 결국 반도체의 소모전력은 거의 전부가 줄 열로 바뀐다. 다시말해, 반도체는 그런 목적으로 쓸 일은 없겠지만 결국 계산을 할 수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전기 히터와 비슷하다. 전기히터가 소모하는 에너지의 대부분을 열 에너지로 바꾸듯 반도체도 소모하는 에너지를 대부분 열 에너지로 쏟아낸다.


그렇기에 TDP는 '이론상으로는'[각주:4] 실제 해당 부품의 최대소모전력보다 작을 수 밖에 없다. CPU가 소모하는 전력량의 100%가 열 에너지로 변환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TDP가 크면, 소모전력도 클 것이라는 생각은 거의 옳다. 적어도 같은 제조사의 같은 라인업, 같은 세대의 제품끼리 TDP는 소모전력과 정비례하는 수준이다. 컴퓨터에서의 TDP는 '이 부품은 1초마다 이 만큼의 열 에너지를 뿜어내니까, 최소한 그 정도는 식혀줄 수 있는 냉각 장치를 달아주세요' 라는 의미다. CPU가 되었든, 그래픽카드가 되었든 전부 저 뜻이다. 헌데, CPU와 그래픽카드의 TDP를 보는 것은 약간 느낌이 다르다. CPU의 경우엔 사용자가 기본으로 딸려오는 쿨러 대신 다른 쿨러를 달아서 쓸 때도 많지만, 그래픽카드의 경우엔 기본으로 딸려오는 스톡 쿨러 대신 다른 쿨러를 쓸 일이 거의 없어서 그렇다. 그러므로 CPU의 TDP는 제품의 '급'을 보거나[각주:5] 쿨러를 고르기 위한 수치로서 보면 되고, 그래픽카드의 TDP는 전체적인 소모전력을 예상하거나 본체 내부의 총 발열량을 추측하여 계산하는 용도로 쓰면 된다. 케이스의 크기와 냉각팬의 숫자, 위치등을 고려할 때 CPU와 그래픽카드의 TDP를 더한 뒤, 그걸 충분히 식혀줄만한 것들로 고르면 발열 설계를 잘못해서 PC가 다운되는 일은 막을 수 있다. 물론 생각보다 경험이 많이 필요해서 이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부품을 만드는 여러 회사들의 TDP에 대한 기준값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TDP를 가지고 발열량을 정확하게 예상할 수는 없다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똑같이 TDP 100W인 CPU라 할지라도 AMD와 인텔의 CPU는 발열량, 전력 소모량이 다를 것이고 AMD와 nVidia의 그래픽카드가 먹는 전력 소모량도 당연히 같지 않다. 제조사마다 '이 정도 온도가 안전하다'라고 생각하는 범위가 다르고, 발열을 측정하는 방법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부품의 실제 전력 소모 측정값보다 약간 높은 숫자를 TDP로 정하는데, 이게 이론상으로는 TDP보다 실제 소모 전력이 더 커야 하지만 막상 찍어보면 그렇지 않은 이유가 된다. 이를테면 요즘 나오는 인텔의 CPU들은 대부분 TDP보다 최대소모전력이 훨씬 작다.


△ 잘만의 CPU 쿨러. Qmax 값이 최대 300W라고 적혀있다.

쿨러에도 TDP 수치가 적혀있는 경우가 많은데, 위에서 이야기 했듯 '이 정도 발열량은 이 쿨러로 충분히 식혀줄 수 있습니다.' 라는 제조사의 보증이다. TDP 60W짜리 부품에 TDP 30W짜리 쿨러를 쓰면 안될테니, 쿨러 제조사들이 표시해준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쿨러의 경우 TDP는 최대 식혀줄 수 있는 열량보다 약간 적은 값을 쓰는 것이 관례이다. 그래야 안전하니까.


드물지 않게 TDP 대신 Qmax라는 단어를 쓰기도 한다. 똑같이 해당 쿨러가 식혀줄 수 있는 최대의 발열량이란 뜻이다. 위의 CPU 쿨러는 1초에 300W만큼의 열을 식혀줄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즉 TDP가 300W를 넘는 CPU만 아니면 이 CPU 쿨러를 쓸 수 있다. 참고로, 개인 소비자용 CPU중에 TDP가 300W를 넘는 물건은 없다. 300W는 커녕 200W 넘는 물건도 거의 없는 지경이니[각주:6] 저 수치 정도 되면 충분히 식혀주지 못하는 CPU는 없는 셈이다. 적어도 인텔이나 AMD의 CPU중에는 그런 물건이 없다. IBM의 POWER 계열 CPU중에는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기업용 중에서도 끝판왕 수준이라 아마 우리와는 별 관계가 없을 것 같으니 패스. 뜬금 없는 이야기지만 열이나 온도와 관계된 물건에 Thermal의 약자로 흔히 붙는 'T' 대신 'Q'max인 이유는 열역학 때문이다. 보통 열역학에서 총 열량과 관계된 개념은 약자로서 항상 'Q'를 써서 그런 것이니 뜬금없는 알파벳이 붙는다고 이상하게 생각들 하지는 않길.


전자제품에 가장 위험한 두 가지를 꼽아보면 고민없이 물 아니면 열이다. 물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피할 수 있지만, 열은 정상적인 작동 환경에서도 피할 수 없기에 PC를 만들 땐 열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생각해야 한다. 다행히도 친환경이라는 말이 산업 전반에 퍼지면서 PC 부품들의 소모전력과 발열 모두 몇 년 전에 비해서 크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무시해서도 안될 노릇이니 차근차근 공부해서 다들 시원하고 조용하게 PC를 쓰자는게 오늘 나의 결론. 늘 그렇듯 글의 내용과 결론은 별 관계가 없이 이렇게 마무리 짓고 어제 분노의 예비군으로 망가진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쉬러 가야겠다. 더 절망적인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나는 모레 예비군을 또 가야 한다. 모레엔 장대비가 쏟아지길 기원하며 글을 마친다.

  1. '광자'를 저렇게 써놓은 책이 몇 있다. 순 우리말화를 하려고 쓴 표현 같은데 취지는 공감하지만 좀 별로인 번역이었다. [본문으로]
  2. 전선(電線)은 '전기가 흐를 준비가 되어있는 선'을 의미하고 도선(導線)은 '전기가 통하는 선'을 의미한다. 실생활에서는 도선이라는 말은 잘 쓰이지 않고 전선이란 단어를 더 많이 쓰는데, 물리학이나 전자공학에서는 도선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쓴다. 결론적으로 보면 비슷한 의미이지만 한자도 다르고 뜻도 살짝 다르다. 이 글에서는 전선과 도선을 같은 뜻으로 놓고 쓰겠다. [본문으로]
  3. Joule's Heat. 'Joule'이라는 학자가 발견하고 이름 붙인 현상이기에 줄 열이다. [본문으로]
  4. 어디까지나 이론상으로나 그렇고 실제로는 약간 다른데, 그 이유는 아래에 다시 쓰겠다. [본문으로]
  5. 보통은 같은 세대, 같은 라인업의 제품끼리는 TDP가 높을 수록 성능도 높다. [본문으로]
  6. 딱 두 가지가 있긴 한데 한정판인데다 성능이 시원찮고 인기도 더럽게 없어서 금방 단종됐다. AMD의 FX 9590, FX 9370 CPU가 그렇다. 해당 CPU의 TDP는 220W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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