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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화에 맞서

SWEV 2017. 5. 17. 07:24

양자화는 참으로 마법같은 단어이다. 물리학 전공자와 비전공자를 가리지 않고 '양자'라는 단어가 붙으면 전염병이라도 되는 것 마냥 두려워하기 일쑤이며, 나처럼 양자역학 수업을 세 번이나 듣고도 무슨 정신나간 소리인지 한 글자도 이해하지 못해서 다들 어떻게 시험을 보는지 궁금해 하는 전공자들도 있다. 양자역학이 어려운 개념이든 아니든간에 양자화라는 개념 자체는 이 글을 쓰는 나와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모두 살면서 흔하게, 아무렇지 않게 쓰고 있다. 그리고 나는 물리학에서 말하는 양자화의 뜻을 빌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써볼 생각이다. 시작이 거창하지만 늘 그렇듯 내 글은 별 알맹이가 없는 내용일테니 편하게 읽어도 좋다.


'어떠한 물리량의 값이 연속되지 아니하고 특정한 최소 단위의 정수배 값만을 가지는 상태' 가 바로 물리학에서의 양자화다. 이 개념은, 각설탕과 물의 차이 정도로 바꾸어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각설탕은 한 개, 두 개 이런식으로 명확하게 개수를 셀 수 있는 상태이지만 물은 그런 구분이 어렵기에 보통은 부피나 무게를 기준삼아 양을 잰다. 양자화의 개념을 두고 생각해보면, 각설탕은 양자화 되어있는 식재료이고, 물은 양자화 되어있지 않은 식재료가 되시겠다. 일정한 단위가 있어서 개수 단위로 셀 수 있으면 양자화가 되어 있다는 대략적인 느낌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양자화 되어있지 않은 대표적인 물리량 중 하나가 '시간'이다. 시간은 무한히, 혹은 무한에 가깝게 쪼갤 수 있다. 완전히 연속된 값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리도, 맛도, 색도 양자화 되어있지 않다. 세상에 존재하는 소리는 종류가 무한대에 가까울 것이고 색 또한 마찬가지다. 자, 여기서부터 비극이 시작된다.



△ 양자화의 한 가지 사례, 무지개

디지털 시대에서 이 양자화라는 개념은 대단히 중요하고도 실용적인 물건이 되었다. 세상의 무한히 연속된 값들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보니, 적당히 '쪼개서' 표현해야 하기 위해 양자화를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지개 안에서 볼 수 있는 색은 무한하게 많겠지만, 우리는 이를 뭉뚱그려 빨주노초파남보 고작 7색으로 표현하곤 한다. 예시가 극단적이지만 당신이 이 글을 보고 있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모니터도 별 다를 것이 없다. 7단계의 색으로 양자화를 시키는지, 1670만 단계[각주:1]의 색으로 양자화를 시키는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 양자화를 하는 방법에 대한 모식도

눈으로 보는 감각만이 양자화된 결과물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음악도 그렇다. 색깔처럼 자연계에 존재하는 소리는 무한한 복잡성을 가지고 있다. 그걸 온전히 담아낼 방법이란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결국 위의 그림처럼 구간을 쪼개고 그 구간의 소리 평균값을 뽑아내는 방식으로 소리를 저장한다. 구간을 잘게, 촘촘하게 쪼갤수록 더 원본에 가까운 소리를 들려주게 되며 이것이 요즘 DAP 시장에서 흔히 거론되는 고음질 음원들의 개념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더 촘촘하게 소리를 쪼개서 녹음한 음원은 더 큰 용량을 가지기 마련이다.


비극이란 단어를 꺼내놓고 난데없이 무지개와 음악 CD 이야길 하고 있으니 무슨 소리인가 싶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양자화란 개념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 카드 뉴스를 만들어 주시는 분들에게 악감정이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무지개가 그러하고, 음악 CD가 그러하듯 뉴스도 양자화가 되는 시대이다. 사회 현상과 사건 사고에 대한 이해는 본디 굉장히 많은 텍스트로 표현해도 충분히 촘촘하지 않은데, 이걸 극단적으로 양자화 시키는 시대가 와버린 것이다. 나는 이 현상이 정말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는 양자화 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디지털 시대의 양자화는 단순화라는 단어와 그 뜻이 거의 같다. 결국 뉴스를 접하는 사람들은 그 실체에 비해서 너무나도 압축 요약되고 단순화된 내용을 피상적으로 받아보는 일에 익숙해지게 되는 부작용이 생긴다. 


이건 정말 나쁜 일이다. 다 큰 성인이 이유식을 먹고 살 순 없다. 아니, 살아선 안된다. 앞니로 음식을 끊고 어금니로 잘게 씹어서 넘기고 위장에서 위산을 분비해가며 소화시켜 영양분을 받아 들이는 일에 몸이 익숙해져야 마땅하다. 그런데 정보가 너무 많은 시대에 살다보니 사람들은 이유식처럼 미리 갈려있는 정보만을 찾는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지식 앞에서 성실해지길 바라는데 카드 뉴스가 범람하는 시대 안에선 그럴 기회마저 박탈될까 두렵다.


무지개의 색을 고작 일곱가지로 생각하는 일은 선홍색과 청록색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는 정도의 손실에 불과하다. 음악에서 특정한 악기의 소리가 양자화를 거치며 왜곡되는 것도 참아줄만한 손실이다. 그런데 양자화된 정보로 생각할 수 있을만한 재료마저 빼앗기는 것은 나는 용납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종류의 카드뉴스와 각종 컨텐츠 큐레이팅 서비스를 나는 온몸으로 거부한다. 육회도 아무 문제 없이 씹어 삼킬 수 있을만한 치아와 소화력을 유지하고 싶듯이, 가공되지 않은 날 것 상태의 정보를 씹어 삼킬 능력이 나에게 계속 붙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기에 이 글을 보는 분에게도 이야기 하고 싶다. 조금 더 지적 성실성을 유지해 달라고, 세상의 복잡성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해 달라고 말이다. 양자화에 맞서 스스로 온 힘을 다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길 바라며 글을 줄인다.

  1. 정확히는 16777216개, 2의 24제곱수 만큼 색상을 표현할 수 있다. 컴퓨터의 컬러는 흔히 32비트라고 표현하지만 실제로 '색'을 나타내는 부분은 24비트, 즉 Red, Green, Blue 각각 8비트씩 할당되어 총 1670만개의 색상을 표현하고 나머지 8비트로는 투명도를 집어넣어 색상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보는 디스플레이의 색상 표현과 관계된 내용을 더 보고 싶다면, 아래의 글을 참고 하시길. http://swev.net/11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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