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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숫자를 굉장히 못외우는 편이다. 숫자를 못외워서 현관 도어락의 비밀번호 대신 손가락이 움직이는 방향과 순서를 기억하는 수준. 그래서 키패드의 5번을 좌표 중심축으로 잡고 손가락을 위아래로 움직여가며 비밀번호를 누른다. 늘 그런 방식으로 문을 열다가 한동안 집을 떠나있던 탓에 손가락의 움직임을 까먹은 적이 있다. 결국 집의 도어락을 열지 못하고 세 번쯤 실패한 뒤에 문을 두드리는 바보짓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집 비밀번호는 동생 생일이란다. 날짜로 기억하면 기억이 나는데, 숫자들만 가지고 기억하려 하니 내 기준에서는 아주 당연하게도 기억하고 인식하기 어려운 숫자의 나열이었다. 엄마는 비밀번호 하나를 못외우는 나를 보며 어찌해야 할지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으셨고, 동생은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는 내가..
라이젠 소식으로 간만에 PC 커뮤니티가 좀 달아오르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 라이젠이란 물건에 대한 사람들의 온도차이가 명확한 것이 내 눈엔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아서 옛날 이야기 좀 곁들어서 설명을 해볼까 싶다. 언제나처럼 가벼운 글이 되겠지만, 꽤 오래 전까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기에 조금 지루할지도 모른다. 아무렴 어떠랴. 하루에 100명 오는 블로그에 지루한 글 하나쯤 쓰는 것도 나쁠 것이 없다. 쓰는 내가 즐거우면 그만이니까. △ 모든 것의 시작, AMD64 x64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이 x64의 원래 이름은 x86-64였다. 이름 그대로 x86의 기본적인 아키텍쳐를 가져오면서 64비트 연산이 가능한 상위 호환의 개념이었고, 지금은 AMD와..
단톡방의 누군가가 갑자기 엉뚱한 말을 꺼냈다. ARM이 인텔의 칩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ARM은 프로세서 아키텍쳐의 한 갈래일 뿐이니 ARM이 CPU를 생산한다는 말은 있을 수 없는 말이고, ARM 아키텍쳐를 만든 회사인 ARM 홀딩스는 애시당초에 공장 없이 설계만을 담당하는 팹리스(Fabless) 기업이다. 공장 하나 없는 ARM 홀딩스가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 공장을 갖춘 인텔의 제품을 생산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말이 안되는 이야기라 나는 다시 물었다. 인텔이 ARM 아키텍쳐의 CPU를 위탁생산 하는 것을 잘못 본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지인은 아래의 기사 내용이 담긴 링크 하나를 보내왔다. 기사 전문 링크 : 인텔 굴욕의 날. ARM 칩셋 위탁 생산 계약 체결[클릭] 일단은..
얼마전 종료된 컴퓨텍스 2016에서 CEO인 리사 수 회장이 직접 나와 AMD의 새로운 CPU 아키텍쳐인 ZEN과 그 데스크탑용 제품인 Summit Ridge에 대해 이야길 했다. ZEN의 성능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이 오갔지만, 명확하게 실체가 없었고 여지껏 AMD는 제품 출시 전까지 성능에 대해 밥먹듯이 뻥을 쳐댔기 때문에 사람들도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지 않았다. 기억에 남은 것 중 가장 바보같이 느껴졌던 것이 제품 개발 코드명 Barcelona의 성능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인콰이어러에 바르셀로나는 인텔을 죽여버릴 것이다 라고 잘도 떠들었지만 실제로 시장에 출시되고 나서 살펴보니 끔찍한 성능과 치명적인 버그가 뒤섞인 엉망진창의 제품이었다. 인콰이어러가 저 시절엔 뻥콰이어러 소리 들으면서 자극적..
쓰루풋? 레이턴시? 컴퓨터의 성능을 보는 기준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크게 나눠 보면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하나는 쓰루풋이고, 하나는 레이턴시이다. 둘 다 평소에 잘 쓰이지 않는 단어인데다가 보통 이야기 하는 컴퓨터 속도의 단위들처럼 한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이기 때문에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 어벤져스에서 토니 스타크가 말하길, 자비스의 쓰루풋 성능은 600 테라 플롭스란다. 쓰루풋(Throughput)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단위시간 당 처리량 정도의 의미가 뜬다. 다시 말하면, '한꺼번에 얼마나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가' 정도로 생각할 수 있고, 차로 치면 최고속도나 최대 적재량 정도로 봐도 된다. 쓰루풋이 성능이 좋은 컴퓨터는 복잡한 인코딩이나 렌더링, 엑셀 매크로, 수치연산, 시뮬레이션 등의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