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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복'을 통해 보는 국군의 자의식 과잉 본문
진짜 사나이라는 프로그램이 얼마나 나쁜 프로그램인지 한도 끝도 없이 늘어놓을 수 있지만 그 부분은 건너뛰고, 출연자인 걸그룹 멤버가 굉장히 미인이라 보면서 감탄했다. 화장기 없는 민낯에 저 추잡한 츄리닝을 입고도 예뻐 보일 정도면 잘 꾸몄을 때 무슨 결과물이 튀어나올지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아, 저 미인은 걸그룹 베리굿의 조현이라는 멤버이다. 나도 저 친구 무지 좋아한다. 헌데, 내가 조현양을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우리네 군이 쓰는 '활동복'이 왜 추잡스럽고 시쳇말로 '찐따같아' 보이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 검정, 회색, 형광노랑의 조합은 옳다. 나이키의 에어맥스 95가 그것을 증명하지 않았는가.
색 자체나 배색의 문제일까 싶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회색이 추잡한 색일리가 없다. 배색의 문제도 아니다. 검정색과 형광 녹색으로 포인트 컬러를 주었는데 이는 오래전에 이미 검증되어 있는 색 조합이다. 소재의 문제도 아니다. 굉장히 고급스런 소재이고, 바느질도 생각보다 튼튼해서 2년동안 그거 입고 별짓을 다했는데 바느질 터진 곳 하나가 없었다. 재단이나 핏의 문제도 아니다. 그렇게 대책없이 벙벙하거나 불편할 정도로 나풋거리는 핏이 아니니까. 평균적인 대한민국 성인 남성 누가 입어도 핏은 예쁘게 나올 것이다. 특히 바지의 경우엔 라인이 들어가있어 다리가 길어보이기까지 한다. 브랜드의 문제인가? 마찬가지로 아니다. 똑같이 ROKA에서 나오지만 간부의 정복과 육군의 전투복은 전세계를 기준으로 놓고 보아도 충분히 멋지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1
△ 공통점이 보이는가?
나는 로고가 싫다. 왼쪽 가슴에 강한친구 육군이라는 단어가 쓰여 있는 것이 나는 정말 불쾌하다. 육군이 강하다는 명제도 증명이 안되고 육군이 친구 같다는 명제도 증명이 안된다. 한국전쟁 시절엔 개전과 동시에 시원하게 밀려서 부산까지 쓸려갔으니 역사적으로 육군이 강하다는 말은 도통 믿음이 가지 않고, 5.18 민주항쟁 시절에 시민들을 때려잡던 특전사는 어디 육군이 아니고 공군 소속이냐고 묻고 싶어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강하지도, 그다지 친하지도 않은 집단이 강한친구라는 말을 하고 있으니 그 지점이 불쾌하다는 것이다. 캐치프레이즈 자체도 설득력이 없고 그걸 가슴팍에 때려박아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저열한 미적 감각은 한숨이 나오다 못해 땅이 꺼질 지경이다.
가슴팍의 강한 친구 육군이란 말은 도대체 누굴 위한 구호인가. 민간인에게 보여주면 군의 이미지가 좋아질 것 같은가? 활동복을 입고 밖에 나갈 일이 거의 없다. 대민 이미지를 위해서라면 전투복에 박아야 할 내용인데 엉뚱하게도 부대 밖으로 나갈 일이 거의 없는 활동복에 박아놨다. 내부적으로 '강한 친구'가 육군이 나아가야 할 길이라는 정신교육을 위해서인가? 개소리 말라. 억지로 끌려와 2년간 감금당한 상태로 여름엔 풀베느라, 겨울엔 눈치우느라 하루가 짧은 20대 초반의 남성들에게 강한 친구라는 단어가 잘도 뇌리에 박히겠다. 못생긴 사람이 나는 예쁘다 잘생겼다며 이마에 '예쁜 여자'. '잘생긴 남자' 문신을 하고 다니면 참으로 볼만하겠다. 강한친구이지 않은 육군이 강한친구라고 스스로 강변하니 그 자의식 과잉은 얼마나 추한가. 2
△ 온몸으로 거짓을 고하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난다기 보단 불쌍해진다.
고작 츄리닝 하나에 얼마나 많은 시대착오적 발상과 고민 없음이 담겨있어야 하나 싶어 안타까울 지경이다. 추잡한 로고를 가슴팍에 박아놓은 채 품평회 한답시고 껄껄거리며 웃었을 장군들의 기름진 미소를 떠올리니 불쾌하기가 이를데 없고, 저런 걸 가슴에 붙이고 2년 내내 돌아다녀야 하는 후배 군인들을 생각하면 속이 쓰리다. 활동복을 입은 스스로의 모습을 거울에서 보았을 때 그들의 속내에서 강한 친구라는 단어는 얼마나 공허하고 의미없게 느껴질 것인가. 좀 더 시원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기껏 혈세를 들여 기능성 소재로 만든 활동복 상의를 바지춤에 넣어입도록 강요한 5077부대의 모 상사는 우리들이 얼마나 더울지 생각이나 했을까 싶기도 하다.
활동복이라는 이름 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활동복의 활동은 무슨 활동을 말하는 것인가. 일할 때도 입고 쉴 때도 입고 잠잘 때도 입는데, 이중 어느 활동을 가리키는지 알 수 없다. 민간에서 흔히 쓰이는 체육복 내지는 트레이닝복과 굳이 왜 다른 이름을 붙여야 하는지도 마찬가지로 알 수가 없다. 특별한 이유 없이 널리 쓰이는 말을 거부하는 것은 언어학적 측면에서 경제적이지도 않은데다 문민통제의 원칙을 고려할 때 민간의 단어를 굳이 거부하는 모습 자체가 건전하지도 않다는 생각을 한다. 왜 거부하나. 이유가 있긴 한건가.
활동복과 관련된 대한민국 국군의 정책은 그 이름부터 디자인의 마무리까지 충분히 고민하지 않은 부분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넓이와 깊이 모두 가늠할수조차 없을 만큼 거대한 바보스러움이 군대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요지는, 활동복이 문제이니 국군도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국군의 멍청함과 자의식 과잉이 활동복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활동복은 하나의 현상이고 지표일 뿐이다. 순서를 헷갈려선 아니된다.
얼마전에 신형 활동복이 공개됐다. 여전하다. 남자의 90%가 군대에 다녀오는 마당에 군대 보급품인걸 사람들이 못알아봐줄까봐 ROKA라고 써놓았냐고 묻고 싶다. 제발 이런 건 민간에 맡기든 최소한 민간의 품평을 받든 해라. 국방부 페이스북 같은 곳에 올리고 뭐가 제일 낫냐고 물어보면 그만 아닌가. 그리고 제발 각성하고 정신 차려라. 당신들이 생각없이 고른 츄리닝 몇벌이 군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있다. '육군' 내지는 'ROKA'라는 이름은 어디가서 내세울만한 자랑거리가 되지 않는다. 그런 걸 입는다고 애국심이 고취되지도 않고, 국토방위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이 생겨나지도 않는단 말이다. 제발 좀 겸허히 자신들의 위치를 받아들여 달라고 주문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딴 로고 만들고 뿌릴 시간에 국토방위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라.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사람들이 당신들을 강한 친구로 대접해줄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글에서 욕한 대상은 의무복무중인 장병들이 아니다. 생각없이 일을 저지르고 뭘 모르는지도 모르는 국군의 높으신 분들을 향한 일침일 뿐이다. 오늘도 고통속에 하루를 보낸 뒤 잠들었을 대한민국 국군의 모든 의무복무병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건강들 하시라. 아프지들 마시라. 할 일만 딱 마치고 당신들을 사랑해 주었던 사람들에게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