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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공감이 없는 사회

SWEV 2015. 11. 17. 06:20

리바이어던이란 책이 있다. 사회계약론이란 개념이 처음으로 등장한 책이다. 토마스 홉스는 이 책에서 개인과 국가의 관계를 계약 관계로 정의했다. 그리고 개개인이 각자의 자유를 최대한 넓게 가져가기 위해서 때로는 스스로의 자유를 묶어둘 필요도 있다고도 주장한다.

 

△ 리바이어던의 표지.

리바이어던의 표지를 보고 법과 도덕의 출발이 개인의 두려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개인만으로는 살면서 쏟아지는 고통과 아픔을 견뎌낼 수 없다. 그렇기에 법과 도덕이라는 굴레를 만들어 스스로를 가둔다. 그 법과 도덕을 휘둘러 권력이라는 무기를 만들어내며 사람들은 같이 살아가는 길을 택했다. 출발점이 개인의 삶이기에 다른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올바른 법적, 도덕적 판단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이게 비극의 시작이다.

 

나는 아이유가 좋았다. 아이유만이 가질 수 있는 감성이라는게 분명히 있었고, 너랑 나 뮤직비디오는 안무와 노래와 화면구성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걸작이었다. 그런데 이번 일은 좀 많이 그렇다. 누군가는 이번 일이 대중들의 폭력이라고 논한다. 나는 되묻고 싶다. 대중들의 사랑을 먹고 사는 대중가수가 대중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면 어떡하나.

 

△ 묻고싶다. 당신의 가족이 독재자의 손에 죽어도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나.

박정희란 사람에 대한 존경도 남의 아픔을 공감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잘못일 뿐이다. 법을 이용해 사람을 죽인 일이 어떻게 정당화가 되나. 내 가족이 뜬금없이 간첩으로 몰려 순식간에 사형되어도 그들은 밥은 굶지 않게 해줬다며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 있을까.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권력자가 개같이 굴어도 내 밥그릇만 채워지면 된다는 생각으로 넘어간다. 그래놓고 공과 과를 논한다니 웃기는 노릇이다. 경제를 발전시키면 독재를 해도 된다는 소리는 우량아만 나온다면 강간을 해도 된다는 논리와 같다. 민주주의를 강간한 희대의 쓰레기에 대해 공을 논해 무엇할까.

 

나는 요즘 세상이 공감이 없는 사회로 기울어 간다는 생각이 들어 많이 두렵다. 공감이 없으니 학대 아동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세월호 유가족들을 비난한다. 그리고 억울하게 스러져간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며 살인마의 딸을 대통령으로 앉혔다.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니 과거를 돌이키지 않고, 과거를 돌이키지 않으니 현재에 갇혀 어쭙[각주:1]잖은 양비론으로 잘못된 정치적 판단을 한다. 누군가에겐 폭력적이었던 리더가 나에게는 관대할 것이라 믿는 사람들의 바보스러움에 나는 요즘 지쳐간다. 법과 도덕은 내 삶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걸, 나의 두려움이 이 사회의 구조를 유지시키는 뿌리인걸 다들 알았으면 좋겠다.

  1. 오타가 아니다. '어쭙잖다'가 맞는 표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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