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V
300만원짜리 메모리, 300만원짜리 컴퓨터 본문
컴퓨터를 만지작 거리다 보면 후배들한테 이것 저것 가르쳐줄 일이 많은데 뜬금없이 굉장한 질문을 하는 후배가 있다. 의정부에 사는 김모군이 가끔 그런데, 오늘은 300만원짜리 램이 있냐는 질문이었다. 전두환의 전재산을 10번 빼앗아도 못사는 메모리라니, 듣기만 해도 두근거리지 않나.
△ 어디서 뭘 보고 이런 걸 묻는지 원...
"응, 있어." 라고 짧게 대답해줄 수도 있겠지만, 어지간한 사무용 컴퓨터 10대와 같은 돈을 주어야 살 수 있는 램이라는건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궁금할 사람들이 분명히 지구상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램에다가 금칠이라도 해놨냐고 묻고 싶을수도 있는데, 원래 램에는 반드시 금이 들어간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메인보드와 맞닿는 소켓 접점 부분에 금박이 얇게 씌워진다.
△ 요즘 환율로 280만원 정도이다. 전두환 재산 10번 빼앗으면 살 수야 있겠네.
어쨌든 300만원짜리 메모리는 분명히 있다. 2300달러쯤 하는 물건이 찾아보면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얘네들은 도대체 어쩌다가 컴퓨터 10대 가격이 되었는지를 이야기 하려 한다. 아무 쓸모가 없는 글이라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쓴다.
일단은 메모리 제조사 이야기를 좀 해보자. 삼성전자가 PC용 D램 제조사들 중에서 세계 1위라고 알려져 있고, 실제로도 그러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D램이라는 물건이 우리가 흔히 PC에서 사용하는 메모리 기판 1개 가 아니다. 위의 사진에서 빨간 테두리 안의 완제품 메모리 대신, 메모리에 들어가는 칩(IC)를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만드는 회사가 바로 삼성전자란 이야기. 그리고 전세계의 여러 메모리 완제품 제조 업체에서 삼성전자의 칩을 사다가 기판에 납땜해서 판매하는 물건들이 시장에 풀려있다. 그렇다면 메모리 완제품을 가장 많이 판매하는 업체는 과연 어디일까. 1
△ 2015년 기준 가장 많은 메모리 모듈을 판매한 업체는 '킹스톤'이다.
우리나라에서야 삼성전자 RAM이 PC에 들어가는 표준 메모리 처럼 느껴지지만, 해외에서는 삼성이 RAM 완제품을 만든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전세계에서 메모리 완제품을 가장 많이 파는 업체는 의외로 삼성이 아니라 킹스톤이다.
△ 이 킹스톤과는 별 관계 없을 것이다. 아마도.
킹스톤이라는 이름이 좀 낯설다. 국내에 들어온 적이 없는 회사는 아닌데 들어올 때 마다 별 재미를 못보고 철수하거나 아니면 그냥 어영부영 묻히기 일쑤였다. 킹스톤은 SSD나 램이 주력 제품인 회사이고 국내엔 보통 플래그쉽 시리즈인 Hyper-X 시리즈 제품들이 들어왔다가 조용하게 단종되길 반복했다. 제품 자체가 경쟁력이 없거나 기술력이 없는 회사도 아닌데 희한하게 그렇다. 킹스톤 이야길 하다가 옆으로 갑자기 샜는데, 아무튼 해외에서는 삼성의 완제품 메모리 모듈이 그렇게 많이 팔리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다시 오늘의 주인공을 살펴보자. 사진을 자세히 보면 메모리에 붙은 스티커에 자그맣게 삼성 마크가 붙어있는데, 저건 보기 드물게 삼성 완제품 메모리로 해외에 유통되는 물건이다. 1개만 꽂아도 64GB라는 큰 용량을 쓸 수 있고, 보통 아무리 작은 컴퓨터도 램 슬롯은 보통 2개쯤 달려있으니 2개를 꽂으면 메모리만 128GB나 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일단 저 정도 메모리는 일반 PC에 꽂아도 작동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가정용 컴퓨터 메인보드는 슬롯당 최대 4~8GB까지 정도 밖에 인식하지 못하고, 가장 최신 규격인 DDR4에 와서야 슬롯당 최대 인식 용량이 16GB로 늘어났다. 그나마도 DDR4를 가장 먼저 쓴 X99칩셋에서는 바이오스 업데이트를 해야 16GB짜리 메모리를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서버용 메인보드에서도 저 정도의 메모리 용량을 인식할 수 있는 물건은 그리 흔하지 않다. 일부 메모리 소켓이 8개나 16개쯤 되는 서버에서나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다.
저 메모리는 여러모로 특이하다. PC용 DDR3 메모리중 가장 용량이 큰 것은 1소켓에 8GB를 꽂을 수 있는 물건이고, 서버에 들어가는 메모리는 PC용 메모리 용량보다 2배 큰 것이 보통 최대치인데, 가끔 드물게 메모리를 여러겹 겹치거나 괴상하게 배치하거나 해서 그 제한을 깨고 나오는 물건들이 있다. 위의 제품이 바로 그러한 형태이고, 덕분에 일반적인 DDR3 서버용 메모리의 최대용량 16GB의 4배에 해당하는 커다란 용량을 가졌다. DDR3 16GB 메모리는 보통 12만원 안쪽이지만, 본래의 규격 한계를 깨고 나온 일종의 특수품 같은 물건이라 저런 충격적인 가격이 매겨진 것이다. 거기에 위의 메모리는 삼성전자에서 만들었지만, 삼성전자에서 유통하지 않는다. 슈퍼마이크로라는 서버 전문 업체에서 자기네 메인보드들과의 호환성을 테스트하고 인증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더 비싸질 수 밖에 없다.
글을 거의 다 써놓고 의정부에 거주중인 김모군에게 물었다. 김모군은 PC에 관심이 많고 질문도 많지만 서버용 제품엔 병아리 눈꼽만큼도 흥미가 없는 친구다. 어디서 무얼 보고 나한테 300만원짜리 메모리가 있냐고 물었던 것인지 궁금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해외에서 저런걸 보고 나에게 이야기 하진 않았을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고.
△ 그냥 자막 담당자가 컴터를 잘 몰라서 생긴 일이었다-_-.
별 거 아니었고, 그냥 자막 담당자의 실수와 서유리의 애매한 말이 섞여서 생긴 일이었다. 서유리는 램에 불빛이 난다며 자랑을 했는데 어쩌다보니 메모리만 300만원이라는 자막이 붙어버렸다. 서유리가 자랑했던 메모리는 AVEXIR의 Core시리즈 메모리였고 저건 AVEXIR에서도 중간 정도에 있는 제품이라 300만원씩이나 할 이유가 없다. 다시 이야기 한다. 컴퓨터 본체가 300만원이다. 300만원짜리 메모리가 아니다. 300만원짜리 메모리는 어지간해서는 정말 보기 힘들다. 아마 길가다가 정우성을 볼 확률과 엇비슷한 정도?
그리고 갑자기 삘이 와서 300만원 정도로 게임을 위한 데스크탑을 맞춘다면 어떤 물건이 될지 견적을 내봤다. 대충 이 정도면 지금 서유리가 쓰는 컴퓨터보다 게임성능은 1.5~1.7배 정도 빠르면서도 훨씬 조용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같은 성능이면 작은 쪽이 여러모로 좋다는게 내 생각인데 서유리의 컴퓨터보다 많이 작다. 적어도 저렇게 조립하면 그렇다. 방송에서는 4~5년 지난 컴퓨터라고 하지만 실제론 2~3년 정도 전에 구매한 물건이고 2~3년 사이의 발전을 통해 같은 가격이면 게임성능은 2배 가까이 뛰는게 이상할 일은 아니다.
후배의 엉뚱한 질문 때문에 또다시 엉뚱하고 쓸모없는 글을 쓰는데 2시간이나 걸렸다. 나는 정말 답이 없는 인간이다.
- 영어로는 모듈(Module), 스틱(Stick)혹은 1DIMM(Dual In-line Memory Module)이다. 참고로 DIMM은 1개의 메모리 스틱을 뜻하는 것 외에도, 마더보드의 램 슬롯 1개를 뜻할 때도 많다. 마더보드의 메뉴얼이나 해외 커뮤니티 쪽에서는 램 슬롯을 DIMM이라 부르는 경우도 많으니 보고 당황하지들 않길.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