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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

↖O_O↗만세!!!!

SWEV 2016. 3. 31. 12:30

후배를 시켜 별 생각없이 건담을 조립하다가 시덥잖은 걸로 빵터졌다. 상반신까지 조립을 하고 이리저리 돌려보는데 등짝에 난데없이 얼굴이 새겨져 있을 줄이야. 보통이라면 등짝에 무장 고정용 구멍을 두개 혹은 하나 뚫고 그만두는데 이 녀석은 등에 지고 있는 물건이 좀 큼직하다 보니 일부러 넉넉하게 구멍을 뚫어놨고 하필이면 그게 꼭 사람 표정같이 생겨서 보다보면 어이없는 웃음이 실실 나온다.


△ ↖O_O↗만세!!!!

OㅁO 뀨?



만세는 훼이크고 본체는 사실 이렇게 생겼다. 생긴것만 보면 나이키 에어맥스 신발을 인간형 로봇으로 늘려놓은 느낌인데, 팔다리가 짧은 구형 HG에 불과하고 프라모델 품질도 특출날게 없지만 그래도 이 건담엔 애착이 가는 이유가 있다.


사진의 건담은 기동전사 건담 시드 세계관에 등장하는 녀석이고 이름은 Stargazer인데, 뭐 천문학자 라고 해석해도 좋고 몽상가라고 해석해도 작품 내용상 틀리지 않다. 건담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모두 전쟁을 반대하는 메시지를 주제로 담고 있지만, 정작 주인공과 주인공이 타는 로봇은 일당백의 살인머신 수준인데, 이 건담은 특이하게도 외우주 탐사를 위해 만들어졌고 따로 파일럿도 없는 무인기로 개발된 물건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건담이 전투병기가 아니라 탐사선인 경우는 스타게이저가 처음이고, 살인과 전쟁에 대해 고민할 필요 없는 인공지능이 그 주역 건담의 파일럿인 경우 또한 이 녀석이 처음.


△ 건담 주변을 감싸고 있는 초록색 선은 소행성이나 운석으로부터 본체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 시스템이다.

무기질적인 전투병기가 아니라 잘 빠진 작업 로봇 같은 느낌의 디자인이 된 이유도 본래의 개발 목적이 싸움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평화적 이유인 탓이리라. 자세히 보면 다른 건담들과 달리 날카로운 구석도 없는데다 최대한 둥글둥글한(특히 가슴) 형태로 건조되어 있고, 결정적으로 손에 무기가 들려있지 않다. 등짝에 있는 커다란 수갑-_-같이 생긴[각주:1] 구조물은 태양풍을 받아 전진하기 위한 추진기관[각주:2]이다. 몸 여기저기가 번쩍거리는 것은 외부에서 움직임을 쉽게 보기 위해 만들어놓은 전등 역할을 한다. 싸움을 위한 물건이라면 굳이 저렇게 번쩍려서 눈에 띄게 만들 이유가 없으니까.


피가 튀고 기름이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만든 물건 치고는 묘하게 운치있는 디자인과 이름을 가졌는데, 아무래도 저걸 만들던 사람들이 인류 전체를 돕기 위해 창설된 비정부기구 소속이라 그런가보다.[각주:3] 그리고 본래의 개발 목적인 외우주 탐사는 하지 못하였으나 작중에서 화합이 이루어지는 작은 방주 역할을 맡아 큰 손상 없는 상태로 건담 시드 스타게이저는 완결된다.


주역기체 주제에 프라모델은 꼴랑 하나만, 그것도 대단치 않은 품질로 나왔고 인지도도 없으며 디자인도 여태까지의 건담들과는 문법이 약간 다르다. 그래도 이런 건담은 흔치 않고 나중에 나온 전혀 다른 세계관에서야 그나마 비슷한 목적과 역할을 가진 건담이 나온다. 이런 희소성이 스타게이저를 특별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샀다. 잘 산 것 같다. 좋다.

  1. 옆방의 정태가 보더니 '얘는 등에 왜 수갑을 달고 있나요.' 라고 물었다. [본문으로]
  2. 링크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태양풍 추진기관은 현실에도 있으나 크기가 너무 커서 쓰기 곤란한 물건이다. 스타게이저는 양자돛이라는 무형의 돛을 펼쳐 평소에 커서 들고다니기 힘들다는 문제를 해결했다. [본문으로]
  3.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렇게 평화로운 시대라면 굳이 건담이라는 브랜드를 가지고 스토리를 짤 이유가 없다. 작중에서 싸움에 휘말리기는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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