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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만들었나

SWEV 2014. 10. 3. 19:18

 

'심심한데 글이나 써보지 뭐' 하는 마음으로 블로깅을 시작했다. 열심히 하다 보니 꽤나 유명해졌지만,  내 블로그인데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엉뚱한 동네가 되어버리고 나니 블로그에 정이 떨어졌다. 존대로 글을 써야만 했고, 정작 내가 하고 싶었던 시덥잖은 이야기는 쓸 엄두도 못내었으며 정보를 잘 정리해서 써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언제나 사랑이 넘치는 우리 부모님은 남에게 베푸는 법을 모를 만큼 나를 못되게 키우진 않으셨지만, 반대로 남 퍼주는게 취미일만큼 날 무작정 착하게 키우지도 않으셨다. 그래서, 내 힘으로 감당 안되던 기존의 블로그를 버려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블로그를 새로 만들기로 결심하고 몇 달동안 머릿속에서 이번엔 어떤 블로그를 만들어볼까 고민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정말 상상도 못 할 만큼 느리게 움직였다. 하루는 티스토리에 로그인을 해보고, 하루는 새 블로그를 개설해보고, 하루는 스킨의 HTML 코드를 5줄 정도 읽어보고... 게으른 성격과 한가하느라 바쁜 이상한 상황이 겹쳐서 무지하게 느린 속도로 일이 진행됐다. 서두르고 싶지 않기도 했고, 예전과 똑같이 블로그를 내팽개치고 싶지 않았다. 온전한 내 공간이 되길 바랐다. 블로그의 이름을 대충 정해놓고 글까지 하나 쓰면서도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아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순전히 게을러서 천천히 작업을 하던 상황에 그럴듯한 이유가 생겼다. 내가 아끼는 사람이 내가 하는 이야기가 너무 어렵단다. 친절하지 못한 나의 말과 글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했다. 내 글은 너무 어렵고 쓸데없이 기름졌던 것이 이제서야 보였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하는 이야기를 다 알아듣고 공감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그래서 내 이야길 어려워 하는 그 사람에게도 충분히 친절한 블로그를 만들어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중학교때 학급 홈페이지를 만들며 제일 처음 썼던 프로그램이 Dreamweaver였는데 베틀로 옷감을 짜듯 씨실과 날실을 엮어 꿈을 짤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이름에 설렜던 기억이 났다. 언젠간 weave라는 이름을 내가 만든 무언가에 꼭 붙여주리라 다짐했는데, 15년이 지난 지금 즈음엔 써도 될 것 같았다. SWEV는 'Sloweave'의 줄임말이다. 그리고 Sloweave는 'slow'와 'weave'를 합쳐서 만들었다. 느린 손놀림으로 충분히 정성을 들여가며 베를 짜듯 글을 쓰겠다는 다짐을 담아 블로그의 이름을 정했고 주소를 정했다. SWEV는 한글로 '스웨브' 정도로 읽힌다. 발음이 불편하지도 않고 길이도 짧아 외우기도 편하다.

 

쓸데없는 메뉴도 싹 다 빼버렸다. 고작해야 핸드폰이랑 컴퓨터 좀 들여다보면서 짜증나면 이명박근혜 욕이나 할 블로그에 내가 어디서 글을 썼는지 지도에 표시해주는 기능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글을 보여주는 것에 온 힘을 다한 디자인과 레이아웃, 딱 봐도 무슨 내용인지 알만하게 만든 카테고리명 같은 부분들은 멋부리지 않고 마음 편하게 글을 볼 수 있도록 고민한 결과다. 한자어는 꼭 필요할 때만 쓰고, 글을 쓰는 시간보다 글을 쉽게 고치는데 조금 더 시간을 쓸 생각이다.

 

갈피를 못잡고 헤매던 블로그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 지 가르쳐 준 그 사람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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