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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GAE 제타 건담 발표 본문
친절하게도 요즘의 반다이는 앞으로 HG 등급에서 무슨 제품이 나올지 소비자에게 힌트를 꼬박꼬박 주는 편이다. 소비자에게는 두 가지 힌트가 주어지는데, 하나는 RG이고, 또 다른 하나는 HG 빌드 파이터즈 제품군이다. RG는 개발비가 굉장히 비싸다. 인기가 검증된 기체만 내놓을 수 밖에 없고, 이런 애들은 HG 등급에서 리뉴얼을 해도 똑같이 잘 팔린다. 그래서 RG와 최근의 HG 리바이브는 어느 정도 제품 라인업이 겹치며 순서도 거의 비슷하게 따라오는 편이었다.
빌드 파이터즈에 바리에이션 기체가 등장하면 곧 원형이 되는 제품을 내놓던 것도 반다이의 규칙이다. 여차하면 금형을 같이 써서 돈을 아낄 수도 있었고 원형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팬덤이 약한 빌드 파이터즈 소속 기체를 통해 소비자들의 반응을 살피기도 좋았다. 백식을 이상하게 만들면 굉장히 욕을 먹겠지만 백만식은 부담 없이 만들어볼만 하지 않겠나.
RG로 제타 건담이, HG엔 라이트닝 제타와 스크램블 건담이 나와 있다. 이 쯤 되면 제타 건담이 HG 등급에서 조만간 새로 나올 것이라는 예상을 누구나 할만했다. 마침 HGUC 제타가 나온지도 13년이나 흘렀기에 시기상으로도 적당했고, HG 리바이브라는 말까지 만들어내며 오래된 기체들을 새로이 버전업 하는 요즘 반다이의 라인업을 보아도 나올만한 이유들이 차고 넘친다.
△ 최신 HG답게 묵직하고 균형 잡힌 비율이다. 멋져.
그리고 올 겨울 건프라 엑스포가 열리며 제타 건담이 HG등급에서 새로 나온다는 정보가 떴다. 그런데 게시글의 제목이 좀 묘했다. HGUC도 아니고 HGAE란다. 여태까지 들어본 적이 전혀 없는 등급이다. 여태까지 이름 붙이던 법칙을 따르려면 'HGUC 리바이브 제타 건담'이 되어야 하는데 뜬금없이 HGAE 제타라니. 이게 뭔가 해서 찾아보았고, 'HG ACCELERATE EVOLUTION'의 약자란다. 굳이 번역하자면 진화 촉진 정도가 될텐데, 도대체 뭘 어떻게 만들길래 이런 괴상한 이름을 붙였나 싶어서 공개된 시제품 사진을 찬찬히 뜯어봤다. HG면 HG지 난데없이 AE가 붙을 이유가 어디 있겠나 라는 생각이었다.
△ HGUC 제타는 튼튼한 변신을 위해 상반신을 잉여 부품으로 만들어버린다.
제타 건담은 기본적으로 가변형 기체이기에 등급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변형은 재현을 해줬다. 구판 HGUC에서는 팔다리를 전부 뜯어내고 일부 부품만 웨이브라이더용 별도 몸통에 붙이는 형태였고, RG나 MG에서는 탈부착 없는 완전변형을 넣어 주었지만 그것 때문에 변신 구조가 까다로워져서 한 두번 변신을 해보고 나면 낙지처럼 흐물거리거나 여기저기 부러지고 망가지기 일쑤였다. RG의 억지스러운 고관절은 덤이다. PG쯤 되어서는 크기가 크다보니 튼튼하게 각이 잡혔지만 PG는 오래된 물건이라 프로포션이나 디테일이 요즘 기준에서는 너무 촌스러웠다. 변형 기능은 제타라는 기체의 매력이면서도 프라모델에서는 다른 부분에서 손해를 보게 만드는 양날의 검이다.
△ 자세히 보면 가슴장갑 아래에 팔 부분이 접혀서 들어간 것이 보인다.
그런데 새로 뜬 HGAE 제타는 뭔가 좀 달라보인다. 구판 HGUC 제타는 변신후의 디자인을 위해 아예 설정상의 변형 구조를 완전히 포기했는데 이번 제타는 가슴 장갑 아래에 원래의 변형 설정대로 팔 부분이 접혀 들어간 것이 보인다. 저게 되려면 몸통의 허리 부분도 같이 안쪽으로 오므려져야 하는데 그 부분 때문에 모든 등급에서 제타의 허리는 굉장히 짜증스러웠다. 딱 고정이 되질 않으니 자세를 잡으면 허리 부품이 안쪽으로 밀려들어가며 갑자기 개미허리가 되어 있거나 변형 과정에서 접고 펴면서 안쪽의 부품이 부러지지 않을까 신경이 쓰이거나 이런식이다.
△ 허리 부품이 통짜인 것 같다.
적어도 이번 HGUC 제타에선 그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허리 부품은 교체식으로 오므려진 부품과 펴진 부품을 따로 주거나, 웨이브라이더 모드일땐 아예 빼버리는 방식이지 싶다. 위의 사진을 보면 허리 부품이 접혀 들어갈만한 가동 구조가 보이지 않는다. 뭐가 되었든 예전처럼 상반신이 거의 통째로 남는 것보다는 더 나은 모습일 것은 확실하다.
△ 어깨에 가동축이 보인다. 축의 굵기를 보니 꽤 튼튼할 것 같다.
이 번엔 위에서 내려다 본 사진. 어깨 관절 부분을 자세히 보면 어깨 전체가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가동축이 심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여태까지 나온 제타들엔 전부 저게 없어서 뭔가 자세를 역동적으로 잡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여지껏 나온 제타들은 변형을 위해 가동률을 포기하거나 혹은 변형을 아예 포기하고 완제품 피규어처럼 만든 물건들 뿐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제타 프라모델들이 전자처럼 가동률을 포기한 사례일 것이고 로봇혼이나 가동전사 제타 건담이 변형을 포기한 후자의 사례이다. 그런데 이번 제타는 변형도 되면서 팔다리도 마음껏 움직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어깨 부분을 유연하게 만든 결과가 아래의 사진이다.
△ 어깨 관절이 여태까지 나온 모든 제타 프라모델중 가장 자연스럽다.
어깨 부분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면서 드디어 하이퍼 메가 런처를 양 손으로 자연스레 쥐게 되었다. RG에선 가격을 3000엔으로 억누르려다 하이퍼 메가 런쳐가 빠졌고, MG에서는 팔 부분의 가동률이 안나와서 양 손으로 쥐어도 영 폼이 안났는데 HGAE 제타에서는 어깨가 시원시원하게 움직이다보니 괜찮은 포즈가 나온다. 정말 정말 마음에 든다.
△ 너무 너무 멋지다.
몇 년 전의 HG 올건담 선언 이후에 나온 HG 등급의 건프라들은 솔직히 말해 뻔한 제품들이 너무 많았다. 한결같이 잘 정제된 반다이 기술이 담긴 질좋은 프라모델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고, 가장 최근의 작품인 HGCE 스트라이크 프리덤 조차도 반다이의 매너리즘이 보여서 실망스러웠으니까. 거기에 이제는 구판이 되어버린 HGUC 제타 건담이 지금 기준에서 보아도 괜찮아서 여기서 나아져봤자 뭐 얼마나 좋아지겠나 싶었다. 제타가 리바이브로 나올 것을 뻔히 알면서도 다들 별 기대 없었을 것이다. 나도 요즘 시대에 맞게 비율과 사출색만 잘 뽑아내도 만족이라 생각했고.
△ 웨이브라이더 모드에서도 너무 너무 멋지다. 헠허컿컿.
그래서 새로운 HGAE 제타가 기다려진다. 여태까지 어디에도 없던 '완벽한 제타'에 가까운 모델이 HG 등급에서 처음으로 나올 것 같아서다. 등급을 새로 만들 정도의 각오와 노력을 담아 만들었다는 뜻으로 HGAE라는 이름을 붙인게 아닐까. 이름이 쓸데없이 거창해 뵈지만 HG 리바이브처럼 저것도 그냥 일종의 '선언'이라고 받아들여도 될 것 같다. 나온지 30년이 넘은 제타 건담을 가지고 여전히 고민하는 우리의 집념을 보아달란 의미의 선언 말이다.
정말 기쁘다. 건프라 하면서 이런 축복을 실시간으로 누릴때마다 행복하다. 흥분된다. 빨리 나와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