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V

사진 편집을 위한 궁극의 컴퓨터를 만든다면 본문

컴터

사진 편집을 위한 궁극의 컴퓨터를 만든다면

SWEV 2015. 11. 19. 09:07

사실 30만원짜리 보급형 데스크탑이나 저렴한 노트북들 가지고도 사진 편집은 그럭저럭 할 수 있다. JPG 형식으로 된 사진은 한 7~8년전 컴퓨터로 편집해도 충분할 만큼 PC들은 이미 충분히 발전해있으니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대충 막찍은 사진은 보정해도 어차피 별 의미가 없다.

허나 돈이 오가는 프로페셔널 시장에서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사진 한장당 용량이 수십MB를 넘나드는건 물론이고 제대로 된 색상을 보지 못하면 결과물이 엉망진창으로 쏟아져 나온다. 전공수업 들으며 모니터의 색역에 대해서 요즘 이리저리 찾아보는 중인데 주변에 사진 찍는 친구들이 몇 있다보니 재미삼아서 궁극의 사진 편집용 컴퓨터 견적을 짜보기로 했다.

작정하고 비싸게 만들어보기로 한 견적이기에 속도/컬러/감성품질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 온전히 창작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아끼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나도 궁금했다.


 

△ 만들다 보니 멈추질 못해서 결국 900만원이 되었다.


CPU/Motherboard/RAM

커다란 RAW 데이터를 편집하는 일이 은근히 CPU성능을 많이 요구하다보니 궁극의 사진 편집 PC를 만들기 위해서는 i7 익스트림을 써야 하지 않나 잠깐 고민하다가 쓸데없이 컴퓨터가 커지는건 영 별로라서 포기했다. 경험상 전문가용 장비들은 확장성에 목숨걸어야 하는 예외를 제외하고는 어지간하면 작은 쪽이 낫다. 그래야 편하게 막쓰면서도 신경 거슬리거나 불편할 일이 줄어든다.


X99칩셋과 LGA2011 CPU들은 전력소모와 발열량도 문제다. 온도가 높으니 팬이 빨리 돌아야 하고, 팬이 빨리 돌아야 하니 시끄러워지는데다 먼지 청소도 자주 해줘야 한다. 여러모로 한 번 조립 해둔 뒤 신경쓰지 않고 쓰기 힘들다. 유지보수의 피곤함만이 문제가 아니다. X99 칩셋은 CPU와 칩셋을 이어주는 통로인 DMI의 버전이 낮다. DMI의 버전이 올라가도 벤치마크상에 눈에 띄는 변화는 없지만 더 최신의 인터페이스에 최적화되어 설계되기 때문에 아무래도 버전이 높은 쪽이 미묘하게 더 빠르다.


△ 스카이레이크에 와서야 DMI 버전이 3.0으로 올라갔다.

그래서 고민끝에 하스웰 익스트림 대신 스카이레이크를 골랐다. 스카이레이크 CPU는 인텔이 간만에 성능향상을 위해 애쓴 결과물이다. 샌디브릿지 - 아이비브릿지 - 하스웰로 이어지는 인텔 CPU 발전사에서 한동안 CPU성능 보다는 저전력과 내장그래픽 성능에만 집중이 이뤄졌었고 6세대인 스카이레이크에 와서야 CPU 자체의 성능이 크게 올랐다. 여러모로 현 시점에서 '개인 소비자가' 고를 수 있는 CPU중에서는 가장 좋은 물건이라 할만하다.


오버클럭은 전혀 하지 않을 물건인데도 K버전 CPU와 Z시리즈 칩셋 메인보드를 고른 이유가 있다. 일단 i7 6700은 기본클럭이 3.4Ghz에 터보부스트 클럭이 4Ghz지만 i7 6700k는 기본 클럭이 4Ghz에 터보부스트 클럭이 4.2Ghz로 꽤 큰 차이가 난다. 결론적으로, 6700k는 오버클럭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충분히 높은 클럭으로 작동한다.


비싼 메모리를 쓰면 인텔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오버클럭인 XMP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XMP는 eXtreme Memory Profile의 약자인데, XMP를 지원하는 메인보드와 짝을 이루면 메모리에 각인 된 기본 클럭을 무시하고, 오버클럭된 두번째 클럭 프로파일을 불러온 상태로 작동한다. 인텔과 메인보드 제조사, 메모리 제조사가 공식적으로 제공하는 기능이기에 오버클럭 특유의 불안정성이나 호환성 문제를 겪을 일이 전혀 없으며 스톡상태의 안전성을 완전히 보장하면서도 시스템의 반응성을 크게 올릴 수 있다. RAW 이미지를 대량 편집 할 때 메모리를 상당히 많이 끌어다 쓰는 편인데, 저런식으로 메모리 성능이 1.5배 가까이 오르면 당연히 편집 과정이 상쾌해진다. DDR4에 와서는 램을 2개만 꽂아도 32GB라는 큰 용량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메모리가 늘어난 만큼, 더 많은 사진을 한꺼번에 열어놓고 작업할 수 있다.



Display

4K 해상도가 본격적으로 보급화 되기 시작했고, 각 제조사마다 플래그쉽 라인에 4K 모니터들을 올려놓으면서 괜찮은 제품들이 많이 쏟아졌다. 삼성 제품이 괜찮은 계측 성능이 나와서 넣을까 싶었지만 삼성 모니터에 데인 기억이 많은데다가 삼성이 내놓은 최상위 제품군 모니터들이 사고를 친 전례가 많다보니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삼성이 처음 만든 고해상도 플래그쉽급 모니터인 305T는 백라이트의 열이 Timer Controller Board에 직격으로 쏟아져서 수시로 모니터가 죽어나갔고 자매품이자 상위기종인 305T Plus는 102%재현률의 광색역 패널이면서 컬러 프로파일을 제공하지 않아 특정 색상이 심하게 강조되어 보였다. 삼성이 전문가용이라 내놓은 XL 시리즈는 인쇄소등에서 쓰라고 만들어놓고 업계 표준 컬러 프로파일인 AdobeRGB를 지원하지 않아 처참하게 외면받았고, S27B970은 팩토리 캘리브레이션을 거쳐서 나왔다며 제품마다 컬러 교정 보증서를 넣어주었지만 전부 복사본이었던게 탄로나면서 시장에서 뭇매를 맞았다. 실제로는 공장에서 컬러 교정을 마쳤고 보증서만 사본이 들어갔다는게 삼성측의 설명이었지만, 이것 저것 생각해 볼 때, 삼성은 프로페셔널 모니터 시장에서 아무래도 영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래서 아웃이다.


LG의 31MU97도 고려해 보았다. EIZO의 CG318-4K와 완전히 동일한 패널이라는 장점도 있고 국내 제조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AS 문제로 스트레스 받을 일도 덜하다. 그런데 아직 장시간 검증이 되지 않았다는 점과 애매한 17:9 화면비, 그리고 마찬가지로 애매한 4096x2160 해상도가 걸렸다. 3840x2160 해상도는 요즘 나오는 어지간한 그래픽카드는 전부 지원하지만 4096x2160 해상도를 쓰려면 그래픽카드를 고르기가 어려워진다. 차라리 5K 해상도처럼 Display Port 입력을 두 개 받는 경우라면 작은 사이즈에 DP가 4포트 나오는 카드들이 많으니 그걸 쓰면 되는데, 1DP로 4096x2160을 지원하는 카드는 생각보다 잘 없고, 있더라도 멀티모니터에 제약이 많다.


△ 델의 UP2715K. 5120x2880이라는 무식한 해상도를 자랑한다.

 그래서 결론은 델이다. 예산상의 문제로 에이조를 고를 수 없을 때 현실적이면서도 괜찮은 대안으로 꼽히며 오랜시간 검증되어온 고급 모니터 브랜드이기도 하다. 캘리브레이터도 잘 붙고 서비스도 그럭저럭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해상도가 높다. 5120x2880이라는 수치는 보면서도 잘 믿기지 않는다. 이 해상도에 견줄만한 디스플레이는 5K 레티나 아이맥 뿐인데, 아무래도 넌글레어 패널이고 각도나 높이 조절이 자유로운 이쪽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다. 물론 전문가용 제품들이 다들 그러하듯이 가격은 자비가 없지만.


△ NVIDIA의 Quadro K1200. LP사이즈 주제에 3840x2160@60Hz DP포트를 4개나 달고있다.

델의 UP2715K 모니터는 5120x2880의 높은 해상도를 위해 Display Port 케이블을 두 개 연결하여 작동한다. 사진 작업을 위해서는 듀얼모니터를 쓰는 경우가 많기에 결국 UP2715K를 두 개 쓰기 위해서는 DP가 4포트 필요하다는 결론인데, 단일 VGA로 4DP를 지원하는 그래픽카드는 개인 소비자용 카드중에는 없고, NVIDIA나 AMD의 워크스테이션용 그래픽카드에만 있다.

 

K1200은 4DP를 지원하는 VGA중 가장 작은데다가 소모전력도 45W밖에 되지 않고 덕분에 작고 조용한 시스템을 꾸밀 수 있다. 그리고 2715K가 요구하는 10bit Color Output을 공식적으로 지원한다.

 

 

Storage

 

△ 현존 최강의 SSD, 삼성 950Pro

스토리지는 상대적으로 고민할 것이 거의 없었다. 그냥 무조건 빠르면 장땡이니까. S-ATA 인터페이스는 한 세대가 지날때마다 2배씩 빨라졌지만, 반도체 기술의 발전 속도는 S-ATA 인터페이스가 발전하는 속도보다 한참 빨랐다. 결국 S-ATA규격은 보급형 SSD나 HDD를 연결하는 용도로 남게 되고 M.2라는 새로운 인터페이스가 고성능 SSD를 위해 생겨났다. M.2는 PCI-Express를 활용한 규격으로서 기존의 S-ATA대비 훨씬 낮은 레이턴시와 높은 쓰루풋 성능을 보장한다. 현존하는 M.2 SSD중 가장 빠른 모델은 단연 삼성의 950Pro이며 512GB 모델 기준 읽기속도 2500MB/s, 쓰기속도 1500MB/s라는 말도 안되는 성능을 뿜어내는데, 가격면에서도 기존의 제품들 대비 경쟁력 있게 출시되어 여러모로 눈이 가는 물건이 되었다. 견적엔 256GB모델이 들어갔지만 더 빠른 속도를 위해서라면 512GB 모델의 구매를 권장한다. M.2 SSD엔 운영체제와 라이트룸 등의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된다.

 

데이터를 빠르게 불러오거나 저장하기 위한 작업용 SSD는 삼성의 850Pro 2TB 모델을 넣었다. 한 세대 지난 S-ATA 인터페이스의 SSD이지만 삼성의 낸드 플래쉬 품질이 뛰어난데다 Vertical NAND(V-Nand)를 활용하면서 용량 집적도에 여유가 생겨 40nm 신호배선폭으로도 2.5인치 폼팩터에서 2TB라는 대용량을 달성했다. 보통 요즘 나오는 SSD들이 데이터 밀도를 올리기 위해 무리해가며 신호배선폭을 줄이다보니 NAND 플래쉬 메모리의 내구성이 저하되곤 하는데 850Pro는 여타의 SSD들 대비 두배 이상 두꺼운 신호배선폭을 활용하여 내구성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상위모델인 950Pro 또한 이러한 장점들을 다 가지고 있다. 여러모로 SSD 시장에서 삼성은 확실한 선두주자다.

 

SSD만 가지고는 데이터를 저장하기에 불안한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기에 작지만 HDD도 하나 추가해 두었다. 용량이 2TB밖에 안되어서 적게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어차피 이 정도의 PC를 쓰는 사람이라면 주요 작업 데이터를 NAS나 파일서버에 백업하고 있을 것이 뻔하므로 별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굳이 2.5인치의 노트북 HDD를 사용한 것은 노트북 하드가 더 조용하기 때문이다.

 

 

Case / PSU / Cooling Solution

 

△ 브라보텍에서 수입하는 Jonsbo사의 U2

케이스를 가장 고민해가며 골랐는데, 작업용 머신이라면 쓸데없이 불이 번쩍거리는건 당연히 못쓰고 크기가 최대한 작아 신경에 거슬리지 않으면서도 내부의 부품들에 열이 쌓이지는 않도록 충분히 공기를 순환시킬 수 있어야 한다. 쓸데없이 통풍구가 많아 소음이 밖으로 새어나와서도 안된다. 여러 제품들이 많았지만 ATX파워와 ITX메인보드를 넣을 수 있는 케이스 중 자리를 많이 차지하여 공간효율이 나쁜 큐브타입의 케이스들을 빼고 나니 브라보텍 케이스가 남았다.

 

크지 않은 사이즈에 부품들이 야무지게 들어가고, 커다란 CPU쿨러를 달아줄 수 있어 더 낮은 RPM으로도 충분히 부품들을 식혀줄 수 있다. 그리고 딱 필요로 하는 만큼의 저장장치 공간(2.5인치 디스크 2개)을 제공하여 공간낭비가 없다는 것도 좋다. LP 사이즈 케이스들처럼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해야 하는 일이 없다는 것도 마음에 드는 부분.

 

파워 서플라이는 뭘 써볼까 하다가 결국엔 몇년째 내가 너무 잘 쓰고 있다는 핑계로 시소닉이 되었다. 4년간 PC를 꺼둔 시간이 몇시간이 채 안될 정도로 심하게 굴렸고 부품 구성도 많이 바뀌었는데 그 과정에서 어떤 문제나 잡스런 일을 겪은 적이 전혀 없다. 미국에선 싼 물건이 한국에서 이상하게 비싸다는 이유로 많이들 욕하지만 남들은 신경 안쓰는 쿨링팬 하나도 산요전기 제품을 쓸 정도로 부품 품질에 신경 쓴 파워가 도대체 몇이나 되나. 당장 시소닉의 P시리즈보다 빌드퀄리티 좋은 파워 서플라이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 부품들의 소모전력은 다 합쳐봐야 200W도 안될 물건이지만 대체할만한 다른 파워 서플라이가 없으니 그냥 650W 플래티넘 모델을 넣는다.

 

쿨링 솔루션은 Thermalright의 HR-02를 베이스로 히트싱크 부피를 줄이고 120mm팬이 번들로 들어간 Macho 120이다. 어차피 CPU의 발열량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오버클럭도 전혀 없는 CPU의 쿨러 치고는 좀 크다 싶지만 그만큼 더 낮은 RPM으로 팬을 작동시켜도 되기에 이 정도 투자는 전혀 과하지 않다. 저 정도 부품의 발열이면 대충 500RPM정도로만 회전시켜도 충분하게 CPU를 식혀줄 수 있다. 그리고 500RPM으로 회전하는 120mm팬은 거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쿨링팬은 EUROS 시리즈이다. REEVEN이라는 브랜드가 한국에서 별로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소니의 S-FDB가 탑재되어 있어 오랫동안 고장없이 쓸 수 있을 좋은 물건. 이러니 저러니 해도 냉각팬을 고를 때 가장 우선적으로 봐야 할 부분은 팬의 수명이다. 2개를 구매하여 시스템 후면의 배기팬으로 하나, CPU 쿨러용 팬으로 하나 장착하면 된다. 아마 컴퓨터는 고장나도 팬은 고장나지 않을 것이다.

 

 

마치며

사진편집용 머신 견적을 가지고 하루종일 고민하는 나를 보며 후배 하나가 누가 쓸 것이냐고 물었다. 그냥 취미 라고 대답했다. 후배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견적에 목숨을 거는 나를 보며 미친듯이 웃었다. 생각해보니 누구한테 팔 것도 아닌데 이리 애써 생각하는 내가 바보같기도 하다. 나는 멍청하지만 저 컴퓨터는 멍청하지 않을 것이다.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