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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SWEV 2015. 12. 29. 00:00

#1.
나는 목소리가 항상 큰 편이었다. 5살때 다녔던 유치원 비디오에서 내가 카메라 근처에 있으면 다른 아이들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내 목소리만 나온다. 안그래도 큰 목소리가 학창시절 이후에 더 커졌다. 그래서 나는 살면서 목이 쉬거나 메어 본 적이 단 한번도 없다.

 

#2.
그런데 헤어지자는 말을 할 때는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언제나 어디서든 크고 당당하던 내 목소리가, 그 순간 만큼은 정말 거짓말처럼 나오지 않았다. 나오지 않던 목소리로 여러 번 반복해서 힘겹게 쥐어짜내가며 이야기 했다. 헤어지자고. 미안하다고. 그 아픈 이야기를 반복해서 짜내야 했던 나도 힘들었지만, 여러 번 들어야만 했던 당신이 더 아팠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3.
몇 달이 흘렀다. 더 이상은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나보다 좋은 사람 만나서 더 많은 사랑 받고 살았으면 좋겠다. 예전처럼 어머님과 같이 쿵짝 맞춰가며 알콩달콩 즐거워 했으면 좋겠다. 그 달달한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감동을 계속 주었으면 좋겠다. 가끔은 길을 가다가 애교많은 고양이가 나타나서 당신에게 함박웃음을 안겨주었으면 좋겠다. 당신과 오랜 시간을 함께한 강아지도 더 오래 곁에 머물며 당신에게 위안을 주었으면 좋겠다. 그때처럼 언제나 눈부시고 예뻤으면 좋겠다. 나는 당신이 정말 행복하길 바란다. 그리고 내 옆에선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나는 그것이 지금도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4.
친구와 한 시간 정도를 통화했다. 별 내용 없는 통화였고, 옆에서 듣고 있던 후배가 무슨 전화를 그리도 오래 하냐며 날 타박했다. 자기는 여자친구랑도 한 시간씩 통화 하지 않는다며 나에게 혹시 연애를 시작했느냐고 물었다. 피식 웃고는 나는 연애 같은 거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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