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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만들어본 몇 가지 프라모델들

SWEV 2016. 3. 27. 12:05

철혈의 오펀스는 아무래도 망작이자 재앙으로 끝날 것 같고 그와중에도 프라모델들은 다들 좋다길래 나도 궁금해서 몇 가지를 사봤다. 발바토스를 먼저 사서 만들고 그레이즈도 사봤는데, 그레이즈는 암만 봐도 이거 디자인이 건담 시리즈에 나오는 로봇이 아니라 기동전함 나데시코에 나오는 에스테바리스 같은 느낌이다-_-.


△ 정태는 민트초코가 먹고 싶어지는 색이라고 평했다.

희성이형이 그레이즈 리터 만드는걸 옆에서 보니 색이나 모양이 괜찮다 싶어서 나도 일반형 대신 그레이즈 리터를 샀는데 직접 만들어보니 생각보다 좀 많이 별로라서 대실망이다. 철혈의 오펀스에서 자쿠 포지션인 물건이고, 메카닉 디자이너도 에비카와 카네타케 담당이라 꽤 기대가 컸는데 만들 때 까지만 해도 조립이 편해서 좋다가 막상 만들고 자세 좀 잡아보려니 슬슬 문제점이 보인다.


△ 그레이즈 쪽의 어깨 관절이 비정상적으로 좌우가 넓다.

일단 어깨 관절이 지나치게 좌우로 넓게 벌려져 있다. 이게 그냥 정자세로 세워 놓을 땐 어깨가 다부지게 떡 벌어진 느낌이라 나쁘지 않은데, 도끼를 휘두르는 포즈를 잡아보면 비례상 짧은 팔이 슬슬 거슬리기 시작한다. 뭘 해도 어린애가 장난치는 느낌이 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허벅지 장갑 디자인이 너무 잘못되어서 다리를 좀 움직일라 치면 심각하게 걸리적 거린다. 하이힐 같은 발바닥이 제대로 바닥에 붙어있질 못하고 붕 뜨는 느낌이 드는 것은 덤이다.


△ 원작 설정화에선 이 정도로 엉망은 아니었다.

원작 설정화를 보면 신체 비율이 지금하고 많이 다르다. 적어도 어깨가 지금처럼 탈골 수준으로 빠져 있지도 않은데다 허벅지 부피도 프라모델처럼 과하지 않고 적당히 휘두를 공간이 나올 정도는 되었다는게 문제. 설정화처럼 어깨를 몸통에 바싹 붙여서 디자인 해놨다면 여러모로 사랑 받는 액션 피겨가 되었을텐데, 일부러 그런건지 아니면 관절 설계를 하다가 삑사리가 난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 자세가 정말 기막히게 잘 잡힌다.

갓프라 HG 발바토스는 발목 관절이 좀 부실한 거랑 왼손 편손 하나를 안넣어준 것 빼고는 다 좋다. 나처럼 거함거포주의에 심취한 사람을 위해 옵션 세트로 왕대포를 내준 것도 좋고 어깨 관절이 아주 잘 만들어져 있어서 거의 사람처럼 어깨가 움직인다. 디자이너가 암만 봐도 미친 것 같다. 아무튼 기가 막히다.


△ 토르소가 이렇게 멋지다니...

건담 프라모델을 조립할 때는 항상 메뉴얼의 순서를 무시하고 몸통부터 만들기 시작하는데, 그게 전체적인 디자인 기조나 형태를 보고 감탄해가며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몸통의 디자인이 멋지면 만드는 중간 중간에도 기대가 되고 즐겁다.[각주:1] 사진의 건담인 AGE-FX는 전통적인 흰색/파란색/빨간색/노란색 기조에서 벗어나서 빨간색 대신 보라색을 넣어 디자인 했는데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새로운 느낌이 든다. 각이 빡빡 잡혀있는 실루엣도 멋지고 포인트로 들어간 형광색 투명 부품도 시선 강탈이다.


△ 서있는 자세에서도 원 디자인이 멋지니 흠잡을 데가 없고,


△ 포즈를 복잡하게 잡아도 실루엣이 뚜렷하게 보이는 디자인 덕에 눈에 잘 들어온다.

디자인만 놓고 보면 정말 잘 나온 프라모델이지만 저 건담이 등장하는 애니인 건담 AGE가 아주 개운하게 망한 작품이고, 망작의 주역기체에 눈에 보이는 품질은 다른 제품들 대비 특출날게 없으니 그게 문제다. 2000년대 들어서 등장한 건담들 중 수위를 다툴 정도로 세련된 모양의 물건인데도 안팔리는 이유가 있긴 있다는 생각.


△ 자세히 보면 책상 너머 침대에 바싹 붙어있는 후배(남자)의 엉덩이가 보인다-_-.

20대 시절 내내 가장 심취했던 취미가 건담 프라모델이고, 그 최초의 작품인 퍼스트 건담 시절에 대해서 예의와 존중의 마음은 가지지만 딱히 애착은 없었는데, 홀리쉿 이 자쿠는 너무나도 멋지다. 기획단계에서부터 프라모델화를 고려하고 만든 시절의 디자인이 아니기 때문에 자쿠나 퍼스트 건담의 디자인은 항상 포즈 잡기에 애로사항이 꽃펴서 반다이가 여러 괴상한 편법을 써야만 했는데, 그러다보니 맨 위의 그레이즈처럼 아예 관절 구조를 디자인 하면서 인간의 신체 비례를 포기해 버리거나, 겉으로 보기에는 사람의 관절과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형태로 작동하는 물건들이 나와야만 했다.


그런데 이 자쿠는 다르다. 여태까지 통짜 몸통으로 그냥 관절 탈골이나 시켜가던 수준이 아니라 아예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것 처럼 팔과 몸통이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사이드 스커트도 다리를 좀 움직이면 자연스럽게 옆으로 밀려난다. 40년 가까이 지나서야 1/144 사이즈의 완벽한 자쿠라 할만한 물건이 나와서 너무 좋다. 아 이건 진짜 여러 대 사야 할 물건인데 문제는 양산형 일반기가 아직 프라모델화가 안되었다는거고 두번째는 자쿠까지 모으기 시작하면 내가 배겨낼 자신이 없다는거다.


△ 이미 나는 충분히 망했다. 나도 알고 있다.

후배들이 달래서 하나둘씩 주고, 친한 형한테 짬처리 당한거 다시 나도 애들한테 짬처리 시키고 몇 번을 반복하면서 주인공 기체만 모으자 라는 원칙으로 모으기 시작했는데 자쿠와 그레이즈가 끼면서 그 원칙도 깨졌고 결국 나도 이젠 알 수 없게 개판이 되었다. 장식장 맨 윗줄은 MG들이고, 중간줄은 우주세기 주역기체들, 아랫줄은 비우주세기 주역기체들만 모아놓은 것인데 생각 이상으로 이놈들이 수량이 많아서 절망중이다. 그리고 더블오 극장판 기체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들 만들어놨길래 자리를 MG보다 더 먹나-_-? HG주제에 어지간한 MG급들보다 전시공간을 더 차지한다. 정말 돌아버릴 지경이다.


덕질 카테고리에 너무 글을 안쓰고 정치인 욕하느라 바빴던 것 같아서 좀 즐거운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건담 이야기를 가볍게 썼는데 결국 결론은 '나는 안될거야'이다. 개노답이다 정말.

  1. 5살 때부터 시작해서 25년 넘게 프라모델을 만들다보니 이젠 프라모델을 만드는 일이 지겹다. 그래도 산다. 왜 사냐고? 만들려고 사는게 아니라 모으려고 사는거다. 이렇게 돈 안드는 축에 속하는 수집도 드무니까. 당장 레고나 베어브릭 같은 걸 생각해보라. 건프라는 레고와 다르게 재판도 꼬박꼬박 해주고 베어브릭과는 다르게 뽑기운도 없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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