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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과 사죄의 글 본문
존댓말로 글을 써야 할 일은 없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모자란 생각으로 쓴 글이 결국엔 문제가 되었네요. 화가 나서 휘갈겨 쓴 글 말고, 생각의 정리의 글이 하나 쯤은 필요하겠다 싶어 따로 글을 적습니다.
요 근 10년간 수도 없이 많은 사건 사고들이 있었지만, 세월호 만큼 사람들에게 큰 고통과 슬픔을 줬었던 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2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고 제 마음속에 마지막으로 남은 생각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분노'입니다.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들 수백명이 아무런 이유 없이 떠나야만 했던 일에 대한 분노요. 국가의 존재에 대한 회의,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었던 저 스스로의 무력함에 대한 울분, 그 외에 이런 저런 감정이 합쳐져서 최종적으로 나온 결과물은 분노입니다. 타인의 아픔에 대한 공감과 슬픔은 뉴스의 세월호 관련 보도가 뜸해져 가듯 차근차근 가라앉겠지만 국가와 스스로를 향한 분노는 쉽게 사그러들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나에게나 남에게나 전 언제나 날이 서있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성격이 모난 것을 어찌해볼 수 없다면, 이 분노를 에너지 삼아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기를 바라며 살고 있습니다.
모두가 저와 같은 감정을 느끼며 살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슬픔을 원동력으로 버텨가는 사람도 있을테고 그래도 아직은 희망이 남았다는 사람도 있을겁니다. 결국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지 않기에, 이 거대한 슬픔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아무리 엄숙해지고 아무리 조심스러워도 모자라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유족들의 슬픔에 크게 공감한다 한들 그게 그들이 느끼는 고통보다 더 클 리는 없을테니까요.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저는 결국 세월호 유족들과 희생자들에게 남일 뿐입니다. 남이 하는 이야기이기에 더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래서 2년간 세월호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블로그에 쓰면서도 공개적으로 제 감정을 드러내거나 여러 말을 늘어놓는 건 피했습니다. 세심하지 못한 제 말과 행동이 제 상상 이상으로 어마어마하게 아픈 사람들에게는 더 큰 상처가 될지도 몰라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넘어져서 까진 무릎에 따뜻한 손길의 쓰다듬기가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 처럼요. 따갑기만 제가 실연으로 아파할 때 남이 아무리 위로해줘도 저한테 도움 안되더라구요. 삶에 견주면 찰나에 불과한 연애와 헤어짐의 과정에서도 수 년간 회복이 되지 않을 상처가 생기기 마련인데 삶을 함께 한 가족의 죽음을 겪은 사람들 앞에서 제가 그 어떤 이야길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세월호 테마를 제작하신 분들께서도 이 정도의 조심스러움은 갖추셨어야 옳다는 이야길 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아무리 아픔을 잘 공감한다 해도 결국엔 남이 하는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는 걸 이해하셨다면, 테마가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죽음 앞에 가장 많이 쓰이는 말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정도 일겁니다. 숱한 말과 글들이 있는데도 사람들이 저 말로서 간결하게 마음을 표현하는 건 귀찮아서도, 달리 쓸 말이 없어서도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할 순 없다' 라는 생각을 다들 받아들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내가 공감하려 노력해도 한계가 있으니 고인의 가는 길이나마 평안하길 빌어주는 정도가 가장 옳다고 여겨서가 아닐까요.
몇 년 전에 한 가수가 조두순 사건에 대한 내용을 가사로 쓴 노래를 만들었다가 뭇매를 맞았던 적이 있습니다. 가사도 문제가 있었지만 같은 일을 겪은 피해자 신분이라 한들, 조두순 사건의 피해 아동과 감정적인 연결고리가 많다 한들 노래로 그 슬픔을 누군가에게 전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 사람들의 생각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당사자의 상처는 다 헤아리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고민하지 않았다면 무언가 이야기 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야 맞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도 한 말과 행동도 누군가에게 따갑게 느껴진다면, 그건 잘못이잖아요. 그런 생각으로 썼던 글이었습니다. 그리고 변명은 딱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성격이 불같고 성질이 급하다 보니 페이스북 같은 SNS를 가능하면 하지 않으려 합니다. 사소한 일에 꼭지 돌아서 날뛰는 제 꼴사나운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는 일은 좀 피하고 싶었고 제 얕은 밑천이 드러나는 것도 창피해서요. 생각이 곧으신 분들은 그런 실수가 없으시던데 이리저리 참 많이도 꼬여있는 제 성격에 여과 없이 쏟아져 나오는 글들이 제 보기에도 별론데 남들 보기엔 어떻겠어요. 그런데 저는 말 하는걸 좋아하고 자랑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래서 블로그를 택했습니다. 블로그는 호흡이 길고 템포가 느린 도구이다보니 아무래도 실수가 덜하니까요. 보통 비판의 글은 며칠씩 묵혀두면서 수정을 하다가 내놓는데 이번엔 그렇지 않았던 것이 화근이었네요. 감정을 앞세워 폭력적인 표현으로 글을 썼습니다. 생각을 전달하고 싶었다면 조금 더 점잖고 예의 바를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했네요. 나의 선행이 남에겐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글을 쓰면서도 제 스스로의 폭력은 억누르지 못했으니 욕먹어 쌉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더 조심스럽고 더 제대로 된 글을 쓰겠습니다. 제 글로 인해 상처받으셨을 더블닷 컴퍼니의 관계자 분들과 마음의 불편을 겪으셨을 모든 방문자 분들에게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