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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주인 직접

SWEV 2016. 6. 13. 01:13


땅이나 건물을 파는 플랜카드에 '주인 직접'이라는 단어가 쓰여있는 것을 자주 보았는데, 난 여태까지 그게 건물주가 직접 벽돌을 날라가며 하나하나 지었거나 농사 짓던 땅을 판다는 뜻인 줄 알았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했던 이유는 순전히 집안 분위기 탓인데, 우리집은 AS 기사를 부를 일이 인터넷 신청할 때 빼고는 거의 없다.[각주:1] 어지간한 가전기기는 아부지와 나 둘이서도 충분히 잘 고치는데다 전기공사나 비데 작업 같은 것들도 사람을 부르는 것이 귀찮아 직접 해버릇 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삼촌들은 집을 짓거나, 엘리베이터를 자작하거나 스쿠터를 만들어서 타고 다니니[각주:2] 내가 저런 엉뚱한 생각을 했던 건, 어릴적부터 자력갱생을 착실하게 학습한 결과물일 뿐이다. 집을 짓는게 취미로 삼을 만큼 만만한 일이 되었나 하고 잠깐 의심을 하긴 했지만, '주인 직접' 이라는 말이 직접 지은 건물이 아니라는 걸 떠올리진 못했다. 내가 봐도 스스로가 웃기다.


부동산 중개 수수료를 아끼려고 저런 광고를 내걸었다는 것을 아주 최근에 알았다. 나도 부동산 안끼고 여러번 거래를 해 보았지만, 건물 단위 임대나 땅 임대는 괜히 기분이 그래서 함부로 못할 것 같은데, 불경기이다 보니 한 푼이 아쉬운 주인과 임대자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저런 묘한 거래 방법이 생겨났다. 괜히 씁쓸한 일이다.

  1. 인터넷 선을 까는 것 정도야 별 일이 아니지만 모뎀도 들여놔야 하고 본사에 전화해서 회선을 열어줘야 작동하기 때문에 소비자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애초에. [본문으로]
  2. 스쿠터를 자작한 이유가 '담배를 사러 가는 동네 점빵이 걸어서 가긴 멀고 차 끌고 가긴 가까워서' 였다. 보통은 저러면 담배를 보루 단위로 사놓거나 스쿠터를 돈 주고 산다. 그런데 우리 삼촌은 스쿠터를 만든다. 아무리 카센터 사장이라지만 내가 봐도 좀 황당한 구석이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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