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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과 AMD의 차세대 CPU에 대한 몇 가지 생각 본문
얼마전 종료된 컴퓨텍스 2016에서 CEO인 리사 수 회장이 직접 나와 AMD의 새로운 CPU 아키텍쳐인 ZEN과 그 데스크탑용 제품인 Summit Ridge에 대해 이야길 했다. ZEN의 성능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이 오갔지만, 명확하게 실체가 없었고 여지껏 AMD는 제품 출시 전까지 성능에 대해 밥먹듯이 뻥을 쳐댔기 때문에 사람들도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지 않았다.
기억에 남은 것 중 가장 바보같이 느껴졌던 것이 제품 개발 코드명 Barcelona의 성능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인콰이어러에 바르셀로나는 인텔을 죽여버릴 것이다 라고 잘도 떠들었지만 실제로 시장에 출시되고 나서 살펴보니 끔찍한 성능과 치명적인 버그가 뒤섞인 엉망진창의 제품이었다. 인콰이어러가 저 시절엔 뻥콰이어러 소리 들으면서 자극적이지만 알맹이는 없는 기사를 써대던 곳이었기에 기사를 의심스럽게 보면서도 나는 한 줄기 희망을 가졌었는데, 혹시나가 역시나였기에 좀 많이 슬펐던 기억이 난다.
몇 년이 흐르고 AMD의 신형 GPU인 Fury X를 발표하면서 리사 수 회장은 오버클럭커들에게 꿈의 VGA가 될것이라며 치켜세웠지만 정작 알맹이를 까본 Fury X는 거대한 수랭 쿨러를 달아놓고서도 평균 10%도 제대로 클럭을 올리기가 힘든 물건이었다. 좋지도 않은 옛날 이야기 떠올리면서 말이 쓸데없이 길어졌는데, AMD는 요 몇 년간 소비자들을 뜬구름 잡는 소리로 유혹하기만 했지 제대로 한 일이 없었다는 것이 요점이다.
△ 몇 달 전 공개된 ZEN의 성능 관련 슬라이드
그런데 몇 달 전, ZEN의 성능에 대해서 AMD가 직접 구체적인 수치를 말 한 적이 있다. 여지껏 애매한 말들로 소비자들을 현혹했던 것들과 달리 정확한 수치를 이야기 했다는 것이 날 기대하게 만들었다. 지금의 제품들 대비 IPC 성능이 40%가량 올라갈 것이라는 이야기였는데, 결국 저 그래프대로라면 클럭이 같은 1개 코어의 성능은 브로드웰과 비슷하다는 뜻이 된다. 이 건 굉장히 흥분이 될만한 일이다. AMD의 데스크탑용 ZEN인 Summit Ridge는 8코어부터 출시되기 때문이다. 즉, 지금의 4코어 브로드웰 대비 스루풋 성능은 2배를 뿜어낼 수 있다. 1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이야기인지 감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인텔에서 이 정도 성능이 나오는 CPU의 가격은 100만원이 넘는다-_-. 브로드웰을 바탕으로 8코어에 3Ghz 클럭을 가진 모델 가격이 1000달러 이상이다. AMD가 메인스트림급 데스크탑 CPU를 만들면서 1000달러에 판매할 리가 없는데다 현재 인텔 데스크탑의 메인 제품군인 스카이레이크와 가격, 성능, 전력소모 등에서 대등한 경쟁을 펼칠것이라고 언급했으니 대충 200~300불 전후로 제품을 내놓을 텐데, 결국 지금처럼 철지난 i7을 쓰면서도 스카이레이크의 성능이 딱히 매력적이지 않아서 살 생각이 없는 나같은 사람들한테는 그야말로 취향저격 CPU를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지 않겠나.
△ 인텔 스카이레이크의 내부 구조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한가 싶을텐데, 별 거 없다. 인텔이 몇 년간 CPU 성능은 큰 개선없이 두고 내장 GPU 성능에 집중하면서 스카이레이크쯤 와서는 GPU의 면적이 CPU 코어보다도 더 커져버렸는데, GPU 빼버리고 그 자리에 코어만 채우면 4코어를 더 넣을 수 있다. CPU 제조라는 것이 단순히 저런 식의 더하기 빼기가 아니기에 이런 산술적 계산은 얼핏 보기에 틀리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ZEN을 생산하게 될 공장인 삼성과 GF의 미세공정화 수준이 인텔과 수치상으로나마 대등한 14nm 레벨까지 올라선데다 내부구조가 브로드웰과 대단히 비슷해졌다는 증언도 나오는 상황이고, 결정적으로 스카이레이크 쿼드코어의 코어 면적인 122mm^2 수준으로 만들지 않더라도 AMD는 충분히 여유가 있다. 현재 AMD의 플래그쉽인 FX CPU는 코어 면적이 350mm^2가 넘는데, Summit Ridge에서 200mm^2 정도로 코어 사이즈를 줄이기만 해도 웨이퍼 한장 당 나오는 CPU의 갯수는 크게 증가하기에 채산성 면에서 굉장한 개선이 되니까.
같은 미세 공정과 같은 코어 면적이라면 발열과 소모전력도 엇비슷한 수준일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데, 120mm^2급 코어에서는 인텔이 이미 65W라는 수치를 달성했고 단순히 코어 갯수가 두 배니 소모전력을 두 배로 키워도 130W 전후에 불과하다. 저 정도 발열과 소모전력은 늘어나는 거대한 성능에 비하면 아주 값싼 투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게 진짜 너무 꿈결같은 이야기라 머릿속으로는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괜시리 마음이 불안불안 하다. 그리고 코어 면적 수치를 뒤적거리다가 웃기는 사실을 알았는데, 데스크탑 보다 노트북 CPU의 코어 면적이 더 넓다-_-. 최소한 스카이레이크에서는 GPU가 하도 크다보니 그렇다.
자, 여기까지는 AMD의 이야기. 이제부터는 인텔의 이야기를 좀 하고자 한다.
△ 내년 2분기 까지의 인텔 로드맵.
AMD가 신형 CPU를 준비하며 반격과 역습을 준비하고 있지만, 의외로 인텔은 겉으로 보기에 큰 움직임이 없는데, 딱 잘라 말해서 데스크탑용 CPU들은 지금처럼 계속 쿼드코어로 나오게 된다. 이건 셋 중 하나다. AMD 신형이 생각보다 보잘것 없어서 굳이 데스크탑 CPU 라인업에서 무리해가면서까지 코어 갯수를 늘려 상대해줄 필요가 없거나, 혹은 다른 부분에서의 성능향상이 커서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AMD가 설쳐도 시장엔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나-_-.
스카이레이크의 후속작인 캐비레이크가 이미 공장에서 양산에 들어갔다고 하고, 적어도 CPU 코어 자체만 놓고 볼 땐 샌디브릿지 - 아이비브릿지 수준의 살짝 업데이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바뀌는 게 없는 건 좀 위험해 보일 수도 있는데, 위의 세 가지 가정 중 1,3번은 영 재미도 감동도 없는 전개가 되기 때문에 제끼고 실질적으로 소비자에게 가장 좋아보이는 2번 안을 기준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2
△ 'Future' Xeon이라는 단어가 좀 걸리지만, 어쨌든.
몇 달 전부터 인텔이 떡밥을 뿌리던 것 중에 3D XPoint라는 물건이 있는데 굳이 요약하자면 '비휘발성/고속 메모리'이다. 약간 설명이 필요한데, 현재의 메모리는 소비자 기준에서 볼 때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전원이 끊기면 데이터가 훌러덩 날아가지만 속도는 대단히 빠른 반도체가 있고, 전원 유무와 관계 없이 데이터는 보전되지만 속도가 느린 반도체가 있다. 전자는 PC에서 램으로 쓰이고, 후자는 PC에서 SSD나 USB메모리 등으로 쓰이게 된다. 3
인텔이 이야기 하는 3D Xpoint는 속도와 비휘발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는 것이 특징인데, 이게 가능하다면 현재의 PC가 작동하는 구조 자체가 완전히 바뀌게 되는 계기가 된다. 지금은 느린 SSD에서 데이터를 퍼 올려다가 빠른 메모리에 얹어놓은 다음, CPU가 계산을 하는 형태의 '계층화' 상태로 시스템이 작동하게 되는데, CPU에 '비휘발성 고속 메모리'가 직접 연결된 상태로 작동한다면 데이터를 굳이 카피하고 퍼올릴 필요조차도 없다. 이런 개선점을 흔히 '오버헤드'가 줄어든다 라고 표현하는데, 요즘처럼 반도체의 성능향상이 지지부진한 시점에서 저런식으로 오버헤드를 줄이는 일은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진다. 인텔은 3D Xpoint 기술을 활용한 반도체 장치들은 'Optane'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발매될 것을 예고했다. 그리고 캐비레이크는 이 Optane을 공식적으로 지원한다. 4
△ Optane은 분명히 RAM보다 성능이 떨어진다. 적어도 현재로선 그렇다.
사실 윗 문단의 내용은 과장이 좀 뒤섞인데다 캐비레이크에서의 성능은 대단한 변화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 인텔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성능은 현재의 플래쉬메모리 기반 반도체들의 4~6배 정도였는데, 이 수치만 놓고 보면 RAM을 대체하기엔 턱없이 모자라다. 실제로도 1세대의 3D Xpoint는 램을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RAM - 스토리지 사이의 오버헤드를 줄이는 정도에서 끝이 날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소비자용 PC에서는 RAM - 스토리지간 오버헤드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_-. 스토리지를 많이 쓰는 일부의 서버에서나 중요하지...
쓰다보니 인텔이 별로 진지하게 대응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이게 제발 AMD의 ZEN이 엉망이라는 이야기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한 쪽에서는 소비자용 브로드웰-E에 10코어 이상 모델이 출시된 것이 AMD의 ZEN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메인스트림급 데스크탑 플랫폼에서 특별한 성능향상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걸 보면 기대 이하인가 싶어서 걱정스럽기도 하다. 5
아, 모르겠다. 그냥 ZEN은 어차피 연말에 나올테고 캐비레이크는 안봐도 특별할 게 없을테니 일단 기다리면서 천천히 봐야겠다. 적어도 여태까지 나온 정보들을 싹 조합해보면 ZEN의 성능은 확실한 것 같아서 기대가 되는데 AMD 때문에라도 데스크탑 CPU시장에 큰 변화가 생겼으면 좋겠다. 제발.
- 클럭 당 성능을 뜻한다. [본문으로]
- 사실 내가 봐도 3번 같긴 하다-_-. 데스크탑 시장이 이미 완전히 박살났기 때문에 AMD의 신형 CPU가 아무리 설쳐봤자 전체적으로는 별 변화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ZEN은 서버시장에서 크게 활약해줘야 AMD의 바람대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본문으로]
- 3D '엑스' 포인트가 아니라 3D '크로스' 포인트라고 읽는다. [본문으로]
- 갑자기 생각난건데, 왜 '속도'로 이야기 하는지 모르겠다. 영어에서 Speed를 번역할 때 '속도'와 '속력'이 구분없이 쓰이는데 '속도'는 방향성을 포함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적절한 번역이 아니다. PC의 성능을 이야기 하는데 방향성이 있을리 없으니 '속도'일리는 없지 않나. [본문으로]
- 1000달러 넘는 플래그쉽 CPU가 타사의 미들레인지급 선봉장에게 쳐발리면 곤란하니까-_-.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