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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V 2016. 5. 24. 13:41

지포스는 컴퓨터 사양을 볼 수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친숙한 브랜드겠지만, 엔비디아에서 나오는 물건이 지포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포스와 비슷한 구조이면서 그래픽 작업에 최적화된 VGA인 쿼드로가 있고,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는 지포스와 비슷한 구조의 칩을 쓰지만 화면을 출력하는 역할은 포기하고 그래픽카드를 이용한 계산에만 올인한 테슬라 라는 라인업이 또 있다.


그래픽카드를 이용한 계산이라고 하니 뭔가 거창해 보이지만 개념은 간단하다. 사람은 수영을 할 수도 있고, 달릴 수도 있고, 나무도 탈 수 있지만 수영은 물고기보다 느리고, 달리는 건 치타보다 느리며 나무는 원숭이만큼 효율적으로 타지 못한다. 컴퓨터 안쪽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는데, 우리가 쓰는 CPU가 그렇다. CPU는 다양한 종류의 계산을 처리해낼 수 있지만 반대로 어느 특정한 계산에만 최적화 되어있지는 않고, 그러다보니 CPU가 가진 전체적인 성능에 비해서 유독 시원찮은 결과물이 나오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삽이 한 번에 더 많은 물건을 퍼낼 수 있지만 밥을 먹는데엔 숟가락 만큼 적합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가장 최근의 사례를 꼽으라면 비트코인 채굴 정도가 꼽히지 않을까.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 한 명에게 삽을 쥐어주는 것 보단, 고등학생 10명이 삽을 드는 것이 더 빨리 일이 끝날 가능성이 높다. 그래픽카드, 그러니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GPU를 이용한 계산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발상에서 출발한다. GPU는 CPU에 비해 훨씬 복잡도가 떨어지는 연산에 맞추어 설계되었지만 일을 할 수 있는 개별 코어의 갯수가 CPU 대비 월등히 많다. 하나 하나의 코어 성능을 따지면 CPU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떨어지는 대신 코어의 갯수가 수백개에 이르기에 결과적으로 단순 반복연산은 GPU가 CPU대비 더 빠르다. 그리고 시뮬레이션이나 공학계산 같은 분야는 저러한 단순 반복연산이 많기에 엔비디아는 계산을 쉽게 하기 위한 소프트웨어 규약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바로 CUDA이다.




△ 오늘의 주인공인 테슬라 M10

지포스와 쿼드로도 CUDA를 지원하지만, 테슬라는 CUDA성능에만 올인하여 설계된 엔비디아의 특수목적 제품군이다. 기본적으로 지포스와 같은 칩을 사용하여 제조되지만 몇 가지 튜닝이 살짝 더해지고 소프트웨어적인 최적화 차이도 있다. 그리고 그래픽카드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에 모니터 출력을 위한 포트는 없다. 오로지 계산만을 한다.


테슬라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쿼드로에 보조로 붙여서 CUDA성능을 강화시켜주는 아이템 정도의 느낌이 있었는데, 단독으로도 활용성이 보장되는 시대가 왔다. 참고로 쿼드로 + 테슬라 조합을 통해 일부 3D 툴에서 '실시간'렌더링이 가능한 솔루션이 있었다. 요즘엔 쿼드로의 성능이 테슬라 없이도 충분히 강력한데다가 그 정도 가격대의(1000만원 이상) 그래픽 워크스테이션을 써야만 하는 곳에서는 아예 가상화 GPU라고 해서 렌더링만 전문으로 담당하는 GPU 파워를 네트워크로 끌어오기 때문에 잘 쓰이지 않지만, 등장했을 당시엔 굉장히 혁신적인 기술이었다.


△ 4대의 테슬라가 탑재된 GPU 가상화 서버

카드 자체에 냉각팬이 전혀 보이지 않는 모양새라 저게 저래도 되나 싶겠지만, 테슬라는 서버용으로도 많이 쓰이는 물건이라 저런식으로 외부의 팬을 이용한 패시브 쿨링 모델도 나온다. 그리고 위에서 이야기 한 가상화 GPU라는 것은 대충 저런식으로 생겼다는 차원에서 간단하게 소개만 한다.


테슬라라는 물건이 대충 어떤 역할을 하는지 소개했는데 뜬금없이 대다수의 평범한 사용자들과는 2억 광년 정도의 거리가 있는 물건을 이야기 한 이유가 있다. 최근에 엔비디아가 테슬라 M10이란 물건을 내놓았는데, 이게 무지하게 반가울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 파란색으로 칠해진 부분에 GPU가 한 개씩 박혀있다.

테슬라 M10에는 4개의 GPU가 들어간다. 1개의 PCI-E 슬롯으로 통신하는 카드들 중에서 2개의 GPU가 달린 물건은 개인 소비자용으로도 많았다. 얼마전에 조용히 출시된 라데온 프로 듀오도 있고, 요즘엔 엔비디아가 만들지 않지만 지포스 GTX Titan Z처럼 지포스 계열에서도 종종 2GPU 카드는 있었다는 이야기. GPU가 4개라 판타스틱 4라는 이야길 해보고 싶었다-_-. 아, 참고로 저기 쓰인 GPU는 GTX 750Ti 기반이다.


4개의 GPU를 장착한 물건은 VGA 역사를 통틀어서 딱 두 개 밖에 없는데, 하나는 오늘 이야기하는 테슬라 M10이고 또 하나를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대충 15년 정도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 3Dfx의 광기, 부두 5 6000

지금은 기억마저도 희미하지만 3Dfx라는 회사가 있었다. PC용 3D게임 시장의 초창기엔 굉장한 성능과 SLI[각주:1]라는 확장성을 동시에 가지고 게임용 VGA의 제왕으로 군림했는데, 부두 3 시절에 이런저런 바보짓을 하다보니 회사가 망해버렸다. 망하기 직전에 부두 4와 부두 5 시리즈를 개발중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플래그쉽인 부두 5 6000엔 지금 봐도 충격적인 4GPU가 적용되어 있다. 출시하기도 전에 회사가 망하고 엔비디아에 인수되면서 결국 누구도 그 온전한 성능을 짐작할 수 없었던 환상의 물건이지만, 1개의 슬롯에 4개의 GPU를 때려박는다는 정신나간 발상은 저것 이후로는 근 20년 가까이 시장에 소개된 적이 없다. 소비자용 제품이든, 기업용 제품이든 가리지 않고 그렇다.


△ 그래픽 메모리가 32GB나 달려있다.

다시 테슬라 이야기로 돌아와서, 상위모델인 M60의 경우 고성능을 목표로 한 제품이고 하위 모델인 M6의 경우 노트북 VGA를 위한 확장슬롯인 MXM 슬롯형태로 개발되어 블레이드 서버에 들어가게 된다. M10의 경우 애매한 포지션이라 생각될 수 있는데 최근 IT업계가 유지보수의 용이성이나 에너지 효율 문제등으로 인해 실제 계산성능을 가진 컴퓨터는 중앙집중형으로 관리하고, 개별 사용자의 자리에는 간단한 클라이언트 역할의 PC만 갖다 놓는 방식이 유행인 것을 고려할 때,[각주:2] 고만고만한 작업을 하지만 이용자가 많은 상황에서는 저런 중간급 테슬라가 필요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 실제로 출시와 함께 공개된 설명 이미지에는 포토샵이나 오피스 같은 가벼운 프로그램들에 적합하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아무튼, 간만에 4GPU라는 충격적인 물건이 시장에 나온 관계로 썰을 풀어 보았다. 부두가 한 차례 반면교사를 보여주었기에 다시 나올 일은 없을거라 생각했던 방식이었는데, '병렬화'가 화두인 시대에 살다보니 저런 묘한 물건도 보게 될 수 있어 반가울 일이다. 감기 걸렸더니 목이 너무 아프다. 자러 가야겠다.


△ 수 스톰은 제시카 알바가 더 예뻤다.

그리고 글을 다 보았다면 알겠지만 내 글이 늘 그렇듯이 제목과 내용은 별 관계가 없었다. 영화 이야길 기대했다면 당신은 낚인거다.

  1. 당신이 아는 그 SLI가 맞다. 엔비디아가 3Dfx를 인수하면서 SLI 기술도 같이 얻게 된 것. [본문으로]
  2. 실제로 해킹이나 내부자에 의한 데이터 유출 등을 이유로 요즘 어지간한 관공서나 대기업은 아예 외부와 망을 분리하거나 가상화 PC를 들여놓는 경우가 꽤 많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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