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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만들어 본 몇 가지 프라모델들

SWEV 2016. 6. 27. 12:40


PG 유니콘은 별 기대가 없다가 순전히 희성이형 괴롭히려고 사게 만든 뒤, 내가 만들었다. 유니콘 건담 참 좋아하고 개중에서도 각성 상태의 유니콘 디자인과 배색은 정말 최고라고 생각하는데, PG 각성 유니콘은 그야말로 '쩐다'. 관절 설계가 잘못돼서 흐느적거리고 자세를 도무지 잡을 수 없는데다 다리가 이상하게 길어서 괴물같이 보이는 MG와 달리 프로포션이 딱 좋게 나왔다. 적당히 굵고 긴 팔다리가 멋지다. 그리고 PG쯤 되면서 의외의 장점이 또 하나 생겼다.



프라모델은 금형에 열에 의해 녹은 상태의 플라스틱 액체를 채워넣은 뒤 식혀서 굳어지며 만들어지는데, 금형의 모서리 부분을 너무 직각에 가깝게 빡빡 세워놓으면 그 부분에 기포가 차면서 미성형 불량품이 나오거나 높은 사출압으로 뿜어져 나오는 플라스틱 용융액에 의해 금형 내구성에서 손해를 본다. 결국 모서리의 각을 적당한 포기하게 되는데, 특히나 MG나 HG같이 대중적이고 판매량이 많으면서 여러 버전으로 우려먹어야 하는 프라모델을 만들 땐 최초 디자인 과정에서부터 가장자리의 각을 적당히 둥글리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PG같은 최상위 등급에서도 그런 타협이 있으면 곤란하니 제대로 만들어 두었다. 겉 장갑판의 가장자리 모두가 각이 빡빡 살아있어 멋지다. 뭐 사실 일본 완구법 때문에라도 HG 등급에서는 날을 세우지 못하는 탓이 있지만, 제대로 만들어진 공업제품을 보는 일은 언제나 즐거우니까. 내 소유의 물건이 전혀 아닌데도 이렇게 즐겁기는 오랜만이다. 그만큼 잘 만들어졌다.




나는 지금도 이게 2002년에 생산된 제품의 박스 디자인이라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흰색 배경에 여백의 아름다움과 타이포를 강조한 박스 디자인이 대세가 된 건 순전히 애플의 공이다. 근데 애플의 디자인 이전에 저 정도 디자인이 있었다는 사실이 좀 놀랍다. 그야말로 시대를 앞서나간 박스 디자인이다. 그러나....



알맹이는 박스만큼 아름답지 아니하다. 그래서 슬프다. 퍼스트 건담의 낡은 디자인을 여러가지로 재해석한 것 까지도 좋고 옛날 프라모델이니 팔다리가 쫙쫙 접히지 않는 것 까지는 납득할 수 있다. 특히 HG, MG, PG 통틀어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주먹손이 들어있는 것이 마음에 든다. 그런데 전체적인 비율이나 라인, 볼륨이 전부 2016년 기준에서 수준 이하다. 발은 너무 크고 몸통은 너무 굵다. 카토키 하지메의 최초 디자인을 프라모델이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흰 부분도 완전히 순백에 가까운 흰색이 아니라 아이보리색 정도인데 푸른끼 도는 새하얀 색이었으면 더 나았을 것이다. 그래서 좀 아깝다. 새로 한 번 더 나왔으면 좋겠다. 기왕 나오는 김에 디자인 자체는 맘에 드니 HG 등급으로도 나왔으면 좋겠다.




에비카와 카네타케의 메카닉 디자인이 하체부실인 경우가 많아서 좀 별론데, 가슴이나 몸통쪽 디자인은 정말 최고다 최고. 토르소 상태로 놓고 보면 이렇게 멋질 수가 없다. 와 어떻게 저런 디자인과 배색을 뽑아냈을까. 전체적으로 채도만 한 톤씩 내렸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충분히 멋지다. 와......



RG 더블오라이져도 PG 유니콘처럼 특별한 기대 없이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한참 멋졌다. MG보다도 오히려 나을 정도. 더블오 퀀터나 엑시아가 모두 기대 이하의 품질이라 만들면서 엄청 실망했기에 발매순서가 퀀터와 엑시아 사이였던 더블오라이져도 개판일 줄 알았더니 HG와 MG, PG 모두를 씹어삼킬 물건이다. 팔 관절이 설정상의 디자인과 달라서 좀 아쉽지만 전체적인 비율과 디테일의 밀도, 볼륨의 분배 등등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 사진이 위에서 내려다보며 찍어서 비율이 이상해 뵈지만, 실물로 보면 전 등급의 더블오를 통틀어 최고라고 단언할 수 있다.


키트는 더블오 건담과 오라이져 모두 포함된 더블오라이져 상태로 발매됐지만, 위에서 이야기 했듯이 더블오라이져 상태에선 하체부실에 뭐 하나 해보기도 피곤하고 딱 처음 롤아웃 되었을 때의 저 상태 그대로 두고 전시하면 될 것 같다. 물론 내 물건이 아니기에 나는 전시할 일이 없다. 희성이형은 아마 더블오라이져 상태로 전시할 것 같다-_-.




프라모델이 아니라 미니카.....아니 저것도 프라모델이라면 1:1 스케일의 레플리카 프라모델이긴 한데, 아무튼 미니카다. 마찬가지로 희성이형한테 짬처리 당했고 열심히 만들어서 헌납했다. 94년도에 달려라 부메랑이 한국에서 대박인기가 터지면서 미니카 유행이 퍼졌지만 타미야 본판의 금형을 가져오는 대신 지금은 망한 올림푸스라는 장난감 회사에서 멋대로 만든 떡금형 섀시를 써서 만들었다. 당연히 아귀도 잘 맞지 않고 달리다가 지 혼자 기어박스가 분해되는 참신한 병신같은 물건이었다-_-. 뭐 90년대의 한국 금형 기술이 어디 가겠나. 그것도 애들 사는 장난감에 공 들일리도 없고 말이다.


어쨌든 시간이 흐르고 타미야가 달려라 부메랑의 킷들을 새로이 설계해서 내놓으며 다시 만져볼 일이 생겼는데, 솔직히 말해 썅욕 해주고 싶다. 타이어와 섀시가 중구난방인게 말이 되나. 20년이나 지나서 굳이 저 아이들을 들여놓을 사람들이면 옛날의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서인데, 그럴거면 한가지 포맷으로 통일해서 내놓아야 정상이지 섀시와 타이어 종류 하나 통일을 못해서 내놓으면 도대체 뭐하자는 플레이인가. 심지어 신형 MS 섀시는 섀시 자체의 특성은 마음에 들지만 넙데데한 디자인 때문에 무겁고 둔해보이는데다 범퍼가 쓸데없이 복잡하게 생겨서 간결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의 부메랑 시리즈 미니카들과는 어울리지도 않는다. 그냥 윗 사진 맨 오른쪽의 올리브색 미니카(캐논볼)처럼 간결하고 옛날 생각 나게 만들었으면 되었을 것을 쓸데없이 덧붙여놓은 느낌. Oldies but Goodies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아쉽다 정말.




웃긴 게 요즘에 프라모델을 100만원어치는 넘게 만든 것 같은데, 내 돈주고 산 내 물건은 단 하나도 없고 싹 다 희성이형 것을 내가 멋대로 만든 것들 뿐이다. 이것 저것 여러가지 만들면서 느끼는 건데, 난 너무 까다로운 소비자 같다. 그냥 감사합니다 하면서 즐겁게 만들고 전시해두면 그만일텐데 굳이 지랄같이 품평을 하고 투덜거린다. 이것도 병이다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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