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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라이젠 상품정보

SWEV 2017. 2. 25. 08:31

라이젠 이야기를 너무 자주 쓰는 것 같아서 좀 지겹지만, 다나와에 뜬 상품정보가 정말 너무 심각했다. 디자인은 정말 흠잡을 데 없이 잘 되어 있는데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 무신경한데다 비문이 많고 친절하지도 않다. 남이 열심히 만들어 둔 결과물을 가지고 까는 일은 좀 피하고 싶었다. 블로그에 맨날 남의 욕만 써있으면 좀 그렇지 않겠나.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그래서 쓴다. 쓰는 김에 원본 문구에서 좀 아니다 싶은 부분들을 찝어서 다시 써 보았다. 파란 글씨는 내가 쓴 문장이다.



인공지능이라는 단어가 괜찮아 뵈는 시대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에어컨이나 세탁기에 붙어있는 인공지능 마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20년쯤 전엔 그런 딱지 하나 붙이면 뭔가 제품이 최첨단이라는 느낌을 받곤 했다. 다시 말하자면, 인공지능이라는 표현으로 제품의 값어치를 올리려는 시도는 딱 20년 전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역사는 돌고 돌기에 복고풍이 다시 유행하는 시절도 있기 마련이지만 CPU처럼 미래를 보여주어야 할 물건에 과거의 트렌드였던 단어를 꺼내드는 일은 동의하기 힘들다.


굳이 뭔가 스마트한 이미지를 주고 싶었다면 뉘앙스와 의미는 다르겠지만 머신러닝 같이 2010년대의 단어로 바꾸어도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꼭 그래야만 할 이유는 없다. 소비자는 인공지능이고 나발이고 관심 가지지 않는다. 더 빠른 프로세서에 열광할 뿐이다. 페라리가 인공지능 달았다고 하면 핫해보이겠나.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의 단어를 골라 써야 했는데, 맨 처음 단어 선택부터 어긋났다. 이건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는 지점이다. 마케팅 담당자 누구냐 진짜.


한 회사의 데스크탑 프로세서중 플래그쉽 제품이다. 그리고 경쟁사 제품들보다 더 빠르다. 그럼 심플하게 정리해서 보여주면 될 노릇인데, 인공지능이라는 철지난 단어가 끼어버렸다. 그 아래쪽은 더 심각하다. '고사양 3D 성능을 뒷받침하는 완벽한 성능'이라니. 이리도 어색한 문장이 전체 상품정보의 두번째 문장으로 적혀있다.




아무리 하이엔드 시장을 노리는 제품군이라지만 '클럭 당 성능' 같은 괜찮은 번역을 두고 굳이 IPC를 써야 할 이유가 없다. 사실 논문이나 개인적인 글이라면야 더 짧고 경제적인 단어인 IPC를 써도 되겠지만, 이건 상품정보다. 설명충 소리를 들을 정도로 길게 써놓을 이유도 없겠지만 단어 하나 하나는 충분히 친절하게 다듬을 수 있도록 집착에 가깝게 고민했어야 옳았다. 심지어 첫 번째, 두 번째 문장의 마무리 방식이 완전히 같기에 단조롭고 어색해 보이기까지 한다. 글을 쓴 당사자야 저런 오류가 쉽게 보이지 않지만 다른 사람이 본다면 쉽게 찾아낼 수 있는 실수였다.  교차검증을 전혀 하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




첫 문단의 설명이 너무 공돌이스럽다. 최적의 성능이라고 하면 보통은 '실행 속도'를 이야기 할것 같은데 이 상품정보에서는 '전력대비 성능'을 말하고 있다. 당연히 타겟팅이 명확하지 않아서 나쁘다. 전기는 덜 먹고 열도 덜 난다는 장점을 이야기 해야하는데 엉뚱하게 실행속도를 말하는 것처럼 표현해버리니 좋을 수가 없다.


100Mhz단위 부스트가 '경직'되었다 라고 말할 정도로 나쁜지는 모르겠다. 전압과 클럭의 조절이 세밀하다는 장점을 이야기 하는 정도야 괜찮지만, 지금도 판매중인 자사의 다른 제품군에 적용된 100Mhz의 클럭 조절 단위를 경직되었다고 깎아내리는 것은 곤란하다. 당장 FX와 APU가 중보급형 PC시장에서 나름의 입지를 가지고 있는데다 얘네들을 대체할 라인업은 하반기 즈음이나 되어서야 완성이다. 다시 이야기 하지만 상품정보다. 돋보이게 만드는게 목표지, 다른 제품을 깎아내리면서 홍보하는 일은 모양 빠진다.


맨 마지막 문단에서 '발열 하한에 다다르면 클럭을 높인다' 라는 표현은 정말 별로라고 생각한다. 뭐 이렇게 한 겹 꼬여있는 문장을 봐야하나. "온도가 충분히 낮다면 프로세서는 더 빠르게 작동합니다." 정도로 순화해서 말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이 부분이 사실상 제일 중요한데 상품정보엔 꽤 아랫쪽에 나오고 있다. 그리고는 뜬금없이 인공지능 자랑부터 하니 황당하다. 라이젠에 소비자들이 열광하는건 그건 눈에 띄는 발전이 없던 x86 하이엔드 CPU 시장에서 간만에 많이 빨라진 물건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무얼' 할 수 있는지를 먼저 말했어야 했다. '되는지 안되는지' 혹은 '빠른지 느린지'만 가지고 열광하는 것은 나같은 공돌이들이나 하는 행동이다. 대다수의 소비자는 이 뛰어난 성능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부터 관심 가진다. 가격에 비해 멀티스레딩 성능이 뛰어나서 게임과 방송 스트리밍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는 장점을 두고 무슨 기술 자랑을 하고 있나. Sense Mi라고 하면 사람들은 샤오미 신제품인줄 알텐데 그 이름을 자랑해서 어디에 쓰겠냔 말이다.




이 부분도 마찬가지다. 라이젠 R7이 가장 먼저 노릴 시장은 기존의 i7이 가지고 있던 미들레인지급 워크스테이션 시장인데 이 이야길 먼저 했어야 맞는거다. 그리고 59초가 55초로 줄어다고 써놓았는데 이건 성능 자랑할 때 가장 나쁜 방법이다. 여기서는 타겟을 명확하게 정했어야 했다. 성능 상의 경쟁상대인 6900K보다 10% 가까이 빠르다는 것을 자랑하든가, 가격 상의 경쟁상대인 6800K보다 50% 가까이 빠르다는 것을 자랑해야 했다.


59초가 55초로 줄어든다고 하면 영상편집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야 오 10% 차이가 크지 라면서 받아들이지만 이 제품은 영상편집 하는 사람들만 찾을 물건이 아니다. 하반기에 등장할 라이젠 R5와 R3를 위해서는 잠재적인 구매 고객이 아닌 소비자들에게도 라이젠이란 브랜드가 충분히 알려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그 자랑이라고 내세우는 수치가 고작 '4초'라면 이건 너무 심각하다. 소비자들은 마트에서 1500원짜리 곰탕국물 1400원에 파는걸 두고도 생색낸다고 욕을 한다. 4초 대신 10%를 쓰든가 아니면 그냥 경쟁제품을 이겼다고 말만 해도 충분했다. 경쟁 제품이 6900K라고 알만한 소비자들은 벤치 결과를 찾아보고 수긍할 것이고, 그게 뭔지 모르는 소비자들이라면 오오 드디어 암드가 해냈네요 라면서 응원해줄 것이다.



광고에서 경쟁제품을 대놓고 지목하는 것이 한국 법으로는 불법이기 때문에 '최고사양급'이라는 말로 에둘러서 표현한 것 까지야 그렇다 치겠다. 영상 인코딩 시간을 잡을 것이라면 좀 긴 클립을 써서 차이를 크게 보여주든가, 아니면 그냥 퍼센티지로 변환하는게 나았다. 그리고 더 나은 자사 제품을 이야기 하는데 왜 색깔만 달리하나. 글꼴도 한두단계씩 더 크게 잡고 두 이미지 사이에 부등호 하나 써주면 더욱 직관적일텐데.



상품 정보 자체도 자체지만, 이런 상품정보가 등록된 과정 자체가 영 미덥지 않다. 조급하게 일을 벌이다가 실수를 엄청 해버린 모습을 소비자들에게 들켜버린 셈인데,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돕는 것이 마케팅 대행업체의 할 일이지 않나? 내가 볼 때 이 상품정보는 완전히 다 컨펌 받고 등록된 것이 아니라 일종의 가등록 상태로 예약주문을 받기 위해 미처 다 다듬지도 않은 상태로 일단 업로드 한 것 같은데 한 회사의 신제품을, 그것도 기함급을 내놓으면서 이렇게 스텝이 꼬이는 모습을 보여주면 어쩌자는건가.


특히 마지막의 59초vs54초 부분은 발표회 시연영상 캡쳐화면을 그대로 쓰다보니 발생한 것인데, 어차피 AMD 코리아가 샘플을 따로 가지고 있을테니 직접 긴 클립으로 인코딩 테스트한 결과물을 보여주었다면 성능차이를 더 크게 드러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지 않고 몇 달 전에 공개된 행사 동영상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 이 무성의함이 AMD의 조급함이 드러난 결과라면 너무 없어 보인다. 그래선 안된다.


여러모로 걱정스럽다. 이제 첫 발을 내딛는 상황에서 헤매면 곤란하다. 난 라이젠이 'Make AMD Great Again' 해주길 바라고 있는데, 소비자와 직접 맞닿는 상품정보에 이렇게 실수와 문제가 고스란히 보여버리면 어떡하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AMD와 상품정보를 제작한 업체, 그리고 상품정보에 쓰인 이런저런 워딩을 작성한 drmola쪽에 악감정이 있어서 쓴 글이 아니다. 모두들 잘 되었으면 좋겠다. 우려와 기대를 담아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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