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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

이유를 대봐

SWEV 2014. 12. 7. 20:53

아무런 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 일들이 많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야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조금 더 나은 모습으로 바뀌곤 한다. 이를테면 실내 흡연이 그렇다. 4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은 쉬는 시간,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복도에서도 창문만 열어놓고 담배를 피웠다. 지금은 저런 담임선생님이 있다면 아마 학부모들이 등교 거부를 할 것이다. 무언가 계기가 있지 않으면 사람들은 쉽게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이영돈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그가 만든 일요스페셜 다큐 '술 담배 스트레스에 관한 첨단 보고서'는 흡연 문화를 바꾼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하니 머리를 짧게 자르고 바지는 통을 줄이지 말란다. 외모에 별 신경을 안쓰고 편한게 장땡이던 시절이라 머리는 초등학교때도 짧았고 바지는 통이 큰 것이 편했다. 어쩌다보니 교칙을 잘 지키는 모범 학생이 되어버렸고, 친구들이 머리 길이와 바지 밑단의 지름으로 선생님들과 교문 앞에서 실랑이를 벌여도 나에겐 그냥 남 이야기 였다. 학생들의 복장과 두발을 단속하는 일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다. 굳이 궁금했던 것은 바지를 줄여 입는 것이 내 눈엔 별로인데 그게 다른 사람들 눈엔 예뻐 보이나 정도였다.

 

대학을 진학하고, 이런저런 것들을 공부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자유로운 분위기가 되니 생각에도 제약이 없어졌고 별 같잖은 일에도 이유를 궁금해 하던 성격에 불이 붙어 이젠 당연한 게 왜 당연한지 의심하는 버릇이 생겼다. 두발규제, 복장규정이 도대체 왜 필요한지 궁금해서 근거를 찾아봤다. 애들 입는 옷을 법으로 딱딱 정해놓았을 리가 없다. 하다 못해 지방 조례에도 이런 이야긴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걸 명확한 수치로 규정화 하는 일은 바보짓이니까. 결론적으로, 근거가 없는 규제와 단속이었다. 모든 것은 '학생다움'이라는 알 수 없는 말로 합리화 되고 있었다. 도덕 시간엔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지 말라고 가르치며 외모를 가지고 학생이 학생다운 마음가짐인지 평가하려 드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외모에 신경쓰지 말고 공부에 전념하라는 어른들의 배려라는 말도 있었다. 써놓기는 배려라고 써놓고 배려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벌을 준다. 애들 데리고 말장난 하냐.

 

예뻐 보이고 싶고 남들과 달라 보이고 싶은게 당연하다. 그걸 억지로 못하게 해놓고 배려라는 단어를 갖다 붙였다. 남들보다 예쁘다고 해로울리가 없고, 남들과 다른 것이 나를 해롭게 해선 안되는 것이 정상이다. 공부에 방해될까봐 라는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 별다른 법적/도덕적 근거도 없이 학생들을 괴롭히는 것이 학생들을 더 피곤하게 만드는 것 까지는 상상을 못한다.

 

그리고 유머 게시판에서 황당한 뉴스화면 캡쳐짤을 보았다.

 

 

학생들의 치마 길이가 너무 짧아서 문제란다. 치마가 짧은 것이 학생들에게 해로운가 궁금했다. 술 담배는 어른에게나 아이에게나 모두 해롭지만 아이들에겐 특히나 더 위험하니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서 별로 궁금할 게 없다. 그런데 치마 길이가 도대체 학생들에게 어떤 식으로 나쁜 영향을 미치는지는 계산이 안된다.

 

우리나라가 남녀노소 모두 차도르나 히잡 같은 거 하나씩들 두르고 다니는 분위기라면 내가 이해를 할 것 같다. 법적 도덕적 근거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다들 그렇게 한다면 그게 옳은가보다 하고 그냥 받아들일 것 같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오늘도 미디어에서는 하의실종이란 단어가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다들 벗는다. 의심 없이 즐기고 소비한다. 그런 세상이다. 그렇게 모두를 부추긴다. 아이들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이런 매체의 주된 소비층은 어른이 아니라 아이들이다.

 

△ 고등학생이 공중파 방송에 나와 섹시 댄스를 추는 건 괜찮지만 짧은 치마 교복은 입을 수 없다?

어른들의 욕심과 눈의 즐거움을 위해 다같이 벗고 다니는 것을 동의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걸 따라하는 아이들한테는 그건 학생답지 못하다는 엉뚱한 이야기를 한다. 이 무슨 모순인가. 국민이 허용하고, 미디어가 만들고, 국민은 다시 소비했다. 세 단계에 걸친 제작-유통-소비의 과정에서 그 잘난 학생다움과 도덕은 없었다. 다 같이 즐겨놓고 왜 이제와서 학생들을 탓하는가.

 

국민소득 2만 달러니 뭐니 하는 나라에서 애새끼들 밥그릇 가지고 정치적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애들 보기 창피해 미치겠는데 이젠 별의 별 걸 다 가지고 애들을 괴롭힌다. 교복 입은 학생들 한테 미안해서 가이포크스 가면이라도 하나 뒤집어쓰고 다녀야 하나 싶을 정도다.

 

△ 너는 그냥 조선시대로 돌아가라. 추천 누른 14명도 같이 데려가라.

그 와중에 위 기사의 댓글에 학생은 학생다운게 좋다는 댓글이 올라오고 14개의 추천 수가 쌓였다. 윤복희가 미니스커트 입고 계란 맞던 시절도 아닌데 다들 왜 이리 촌스러운지 모르겠다. 흐름일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롱스커트 유행도 반드시 돌아온다. 돌고 도는 세상이다. 그러니까 제발 학생들 그만 괴롭히고 다른 생산적인 일에 시간과 관심을 쏟았으면 좋겠다. 그 시간에 스즈키 코하루 야동 한 편을 더 봐라. 그게 남는 장사다. 스즈키 코하루는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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