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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V
색조 화장품 욕심 본문
성역할이 사라지는 시대라고 하지만, 여자들에게만 허락된 공간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특히 메트로섹슈얼이라든가 자위와 관련된 것들이 좀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야한 이야기부터 먼저 꺼내자면, 남성의 자위는 조롱과 웃음의 대상이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섹시함으로 표현되는 모습을 찾기가 영 어렵다. 보통은 추잡하거나 혹은 측은한 시선을 담은채로 그려지기 마련이다. 허나 여성의 자위는 그렇지 않다. 여성의 자위는 굉장히 상상력을 자극하는 좋은 아이템으로 묘사되곤 한다. 이를테면 아래의 맥주 광고가 그러하다.
△ 코로나 엑스트라 맥주 광고.
자위 말고도 메트로 섹슈얼이라는 키워드도 여자에게 먼저 허용됐는데, 오래전부터 여자가 남자같이 꾸미고 행동하면 보이시한 매력이 있다고 표현하는 일이 많지만, 남자가 여자처럼 굴면 게이로 오해받는다. 하다못해 2010년대에 와서도 별로 달라진 건 없다. 보이시한 매력의 여자는 흔히 볼 수 있어서 옷 브랜드로도 1 있을 정도인데, 남자가 여성스러운건 '걸리시'라고 표현하면서 일종의 예외처럼 취급된다. 나는 그 이유가 뭔지 글을 쓰는 지금도 무지 궁금하다. 2
나는 평범 이하의 남자이기 때문에 그루밍이니 메트로섹슈얼이니 하는 단어가 유행처럼 퍼져도 나와는 영 멀게 느껴졌다. 이 얼굴에 뭘 해도 안될거란 확신이 있었고, 남자 치곤 화장품 종류에 대해서 잘 아는 편이지만 화장품 중에서도 철저히 여성의 영역인 색조화장은 별 흥미가 없었다는 이야기. 그런데, 굉장히 뜬금없는 키워드가 달라붙으면서 완전히 상황이 바뀌었다. '팬톤' 딱지가 붙은 화장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것이다. 3
△ 인쇄물 작업에 흔히 사용되는 팬톤 컬러북.
팬톤은 일종의 컬러 매니지먼트 시스템(CMS)에 가깝다. 보통 CMS라고 하면 sRGB나 DCI-P3등을 위시한 색역과 해당 색역을 지원하는 디스플레이, 그 컬러의 관리 체계 전반을 의미하는 단어로 쓰인다. 그리고 팬톤은 손으로 만져지는 실물에 특화되어 있는 일종의 오프라인 컬러 체계라고 생각하면 쉽다. 회사의 브랜드 이미지나 컬러가 중요한 인쇄물 작업등을 할 때 팬톤 컬러번호를 기준잡고 만드는 식이다. 플라스틱을 뽑아낼 때도 비슷한 방식으로 팬톤의 컬러칩을 사용해서 색을 고를 수 있다.
디자인, 그중에서도 편집디자인이나 산업 디자인 하는 사람들에겐 굉장히 익숙한 단어일테고 나도 어쩌다보니 디자인 일을 해야 할 때가 가끔 있어서 대략적인 체계나 사용법 정도는 알고 있다. 그리고 팬톤의 컬러북엔 예쁜 색이 정말 정말 많아서 나는 그 컬러북만 가지고도 한나절을 즐겁게 보낼 수 있을 정도다.
△ 2018년 신상, 팬톤과 VDL의 콜라보레이션 화장품.
팬톤은 매년 올해의 컬러를 발표하는데, 2018년도엔 울트라 바이올렛이란다. 그리고 그 컬러에 맞는 화장품들이 올해도 나왔는데, 홀리 쉣 예뻐도 너무 예쁘다. 이건 사기같다. 나는 색조화장에 관심도 없고 내가 저걸 쓸 생각도 없지만 순전히 색이 예쁘다는 이유로 갖고 싶다.
VDL이라는 이름도 마음에 든다. 첨에 들었을 땐 Voltage Distribution Layer 같은 엉뚱한 단어 조합들이 막 떠오르면서 뭐 이런 이공계스러운 작명이 화장품에 있나 하고 찾아봤는데 Violet 어쩌구 하는 회사란다. 후배놈도 이름을 듣자마자 무슨 화장품 회사 이름이 그렇냐며 황당해 했다. 아마 나와 평생 인연은 없을 아이템을 만드는 회사지만, 뭔가 VDSL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름도 그렇고 브랜드 로고나 아이덴티티가 내 취향인 부분이 많아 애착은 가지게 될 것 같다.
△ 이게 정말 너무 갖고 싶은데 화장품을 사야지만 준단다.
화장품 바르는 브러쉬는 나에게 쓸모있을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갖고 싶었는데, 건담과 키보드에 쌓인 먼지를 터는 용도로 쓰면 괜찮을 것 같다. 근데 이걸 받자고 화장품 3만원 어치를 사면 그건 좀 심하게 낭비같고, 이걸 사봤자 마땅히 줄 사람도 없어서 고민이다. 화장품 산 사람한테 저걸 달라고 해도 안줄 것 같고 어찌해야 하나 고민중.
△ 보라색 다이어리랑 저 뒤에 보이는 깡통이 너무 가지고싶다.
그리고 이 한정판 패키지도 너무 탐난다. 다른 건 다 필요없고 저 깡통이랑 다이어리가 너무 갖고 싶은데 염불엔 관심없고 잿밥만 찾는다는게 딱 이거지 싶다. 난 그라데이션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도 위의 이미지 안의 모든 픽셀 하나하나가 다 예쁘다.
△ 건담 키마리스 비다르. 결국 난 기승전건담으로 끝이 난다.
별 이상한데 꽃혀서 아침 시간을 썼다. 저 위의 경품 이벤트는 일단 신청했는데 만약 받게 된다면 건담 키마리스 비다르와 함께 세워놓아야겠다. 뭔가 마무리할만한 적당한 멘트를 못찾겠다. 내가 봐도 내가 이상하니까 이쯤에서 신년 첫 포스팅을 접을까 한다. 의례적인 새해 인사는 작년 마지막 포스팅에서 했으니 생략이다. 정초의 첫 글이 칭찬과 경외의 감정을 담고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글을 마친다.
아, 혹시라도 위 이벤트에 관심 있으신 분들을 위해 아래에 링크를 남긴다. 이 블로그에 들어오는 여자는 거의 없다는 걸 알지만, 이벤트 신청 페이지조차도 감동스럽게 예뻐서 아침부터 기분이 설렐 정도였다. 배경까지 은은한 컬러를 깔아놓는 저 아름다운 센스를 다같이 감상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