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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통법과 갤럭시 알파

SWEV 2015. 1. 1. 19:28

 

 

몇달 전, 삼성은 갤럭시 알파라는 희한한 물건을 내놓았다. 720p의 어정쩡한 해상도, 115g의 황당할 정도로 가벼운 무게, 그 와중에 삼성의 최신이자 최고성능 AP인 엑시노스 5430까지. 저가형이라기엔 AP에 너무 힘이 들어갔고 고가형이라기엔 해상도가 너무 낮았다.

 

그런데 저 애매한 단어들이 뒤섞이고 나니 정확하게 엄마가 원하는 스마트폰이 되었다. 옵티머스 LTE를 쓰시던 엄마는 지금의 스마트폰보다 크고 무거워 지는 것은 절대로 싫다고 하셨고, 저 조건에 맞는 스마트폰은 아이폰 6와 엑스페리아 Z3 컴팩트, 그리고 갤럭시 알파 뿐이었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 익숙하시던 엄마에게 다시 아이폰에 적응하시라 할 수도 없었고, 엑스페리아 Z3 컴팩트는 나도 쓰고 있지만 국내산 스마트폰의 편의기능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적응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갤럭시 알파는 정말 값이 쌌다. 공시지원금을 받으면 40만원 초반 정도에 구매가 가능했고 이 정도는 내가 생각하는 스마트폰의 적당한 가격과 딱 맞아 떨어졌다.

 

동생과 엄마의 스마트폰이 슬슬 망가져 가는 꼴을 견디다 못해서 집 앞의 SKT 대리점에 들러 상담을 받아보니 느낌이 괜찮았다. 스마트폰을 동네에서 구매할 때 가장 짜증나는 일은 판매자와의 밀당이다. 이 사람이 나에게 가격으로 장난질을 치지 않는지 알 방법이 없다. 공부를 해가며 물건을 사야 하는건 요즘 사회에서 당연한 일이 되었지만 판매자와 심리전을 벌이는건 누구도 원치 않을 것이다. 집앞의 SKT 대리점은 아이패드에 깔려있는 앱에서 가격이 바로 뜬다. 사려고 하는 기계와 요금제, 그리고 기변이나 번호이동 등의 조건을 집어넣으면 공시지원금이 뜨고 한달에 요금을 얼마 내야 하는지 실시간으로 계산된다. 개인이 조잡하게 만든 앱이 아니라 SKT에서 직접 만들어 뿌리는 앱이고 디자인에 공들여서 제대로 만든 티가 팍팍 났다.

 

이만하면 괜찮다 싶은 구매 가격과 조건이 나오길래 그날 저녁 엄마와 동생 명의로 한 대씩 개통했다. 뽐뿌를 뒤지면 조금 더 싸거나 좋은 조건이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개통매장이 집앞에 있기에 언제든 찾아가 이것저것 묻기 좋다는 점과 쉽게 문닫지 않는 SKT 공식 대리점인걸 생각하면 충분히 괜찮은 가격이 된다는 계산이 섰다. 요즘 드물게 후회없이 유쾌한 구매과정 이었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 엄마와 동생 모두 만족하면서 쓰고 있다.

 

 

△ 지금은 생기를 잃어버린 용산 전자상가의 모습

 

플래그쉽 스마트폰의 부품 원가는 보통 250~280불 사이에서 정해진다. 저 원가 사이에서 투입 가능한 최고성능의 부품을 고르는 것이 각 제조사들의 노하우이고, 삼성 전자는 그런 부분에서 참 잘해왔다. 그런데 300불도 안되는 원가인게 빤히 보이는데 소비자 가격은 어째서 90만원대로 책정이 되어있냐며 스마트폰 제조사들을 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스마트폰의 출고가는 단순한 공장도가 개념이 아니라 마케팅 비용이나 유통마진 등을 애초에 포함시켜서 나온 금액인 걸 감안해도 좀 과하다는 느낌이 없지는 않다. 갤럭시 알파는 원가가 200불도 안될만한 물건이니 대충 소비자가 기준 45만원 정도면 소비자와 제조사 모두 OK 할만한 값이라 생각했는데, 마침 출고가가 인하되면서 내가 생각한 가격과 대충 비슷해졌다.

 

스마트폰 시장마저 PC 시장처럼 무너지진 않았으면 좋겠다. 가격을 부풀려 출시하는 일은 분명히 잘못 되었지만, PC시장처럼 전체 부품들의 원가구조가 완전히 공개되다시피 해서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이 지속되는 일이 생기는 쪽이 소비자 입장에선 오히려 훨씬 더 피곤하다. 가격 경쟁에만 집중하다보니 소비자가 받아야 할 기본적인 서비스조차 안되는 일이 PC시장에서는 되게 자주 벌어지는 것이 그 증거다. 스마트폰 시장도 가격만 쫓는 소비자들을 유혹하는 페이백 사기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결국, 소비자가 적당히 모르고 넘어가 주는 쪽이 오히려 평균적인 서비스의 질을 높여주는게 아닐까 싶다는 뜻이다. 적당한 이윤이 보장 되지 않는 시장에 지쳐 똑똑하고 양심적인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 버리고 나면 양심적인 장사꾼보단 사기꾼의 비율이 높아진다. PC시장에 나타난 사기꾼들의 모습을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처음부터 단통법이 이러한 효과를 노리고 만들어졌을 리는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냥 정치인들이 멍청해서 생겨난 법안일 뿐인데 어쩌다보니 갤럭시 알파의 출고가 인하와 맞물려서 의외의 일이 벌어졌던 것 뿐이다. 장님 문고리 잡기 식으로 우연히 발생한 일이지만 스마트폰 가격의 적정선이 4~50만원 정도라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 정도 가격이면 삼성도, 유통사도, 나도 모두 해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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