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V
S.H.Figuarts Freddie Mercury 본문
아부지에게 참으로 감사하게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감성을 나에게 충분히 물려주셨다는 점이다. 어릴적부터 음악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9살 때 Fleetwood Mac을 들었고 10살때 Yanni의 Acropolis 공연 실황 비디오를 봤다. 고등학교 때 퀸의 음악을 알게 됐다. 기뻤다. 이런 노래가 있다니. 이런 목소리가 있다니. 숨이 멎을 듯한 감동이었다. 퀸의 음반을 사모으기 시작했고, 마지막 정규 앨범인 Made in Heaven은 너무 자주 듣다가 CD가 다 긁혀서 갖다 버리고 새로 또 사야했다. Too Much Love Will Kill You는 몇천 번은 들은 것 같다. 지금도 하루에 몇 번씩 반복해서 들을 때가 있다.
건담을 엄청나게 모아댔지만 피규어는 왠지 손이 잘 가질 않아서 호기심에 하나 사봤다가 팔았는지 버렸는지도 기억 안나는 채로 사라졌는데, 프레디 머큐리 피규어가 괜찮은게 나왔단다. 살까 말까 하다가 출시 예정일을 잊고 있었는데 취직을 하면 뭔가 나에게 선물하겠다던 후배한테 뜯어냈다. 1 군말 않고 이 비싼 물건을 잘도 사준 후배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시작한다. 2
△ 박스 크기는 대충 소설책 두 권 겹쳐놓은 크기.
S.H.Figuarts라는 브랜드고 사진에서처럼 반다이 계열사 제품이다. 가격은 대충 6~7만원 정도. 옷은 1986년 웸블리 경기장 공연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S.H.Figuarts 홈페이지에 가보면 퀸이라는 카테고리가 있는 걸 보니 다른 멤버나 다른 의상 버전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I Want to Break Free의 여장 버전이나 아가일 패턴 쫄쫄이를 입은 프레디 피규어가 나오면 웃길 것 같긴 하다.
△ 웸블리 공연에서의 프레디 머큐리
지금 다시 봐도 멋지다. 최고다. 진노랑 자켓과 빨간 줄이 들어간 흰바지를 입고 공연을 뛰었는데, 아마도 이게 사람들이 떠올리는 무대위의 프레디 머큐리중 제일 익숙한 모습일 것이다. 나도 저 옷과 위에서 말한 아가일 패턴 쫄쫄이 정도 말고는 기억에 남는 옷이 없다.
△ 사람 이름 뒤에 사용 설명서란 단어가 써있으니 좀 웃기다.
구성품은 마이크를 쥐는 손 두 쌍, 주먹손 한 쌍, 편 손 한 쌍과 마이크 두 개, 그리고 표정이 다른 머리 세 개다. 마이크를 쥐는 손은 마이크 봉을 잡는 손과 마이크 중간 꺾인 부분을 잡는 용도의 손이 각각 한 쌍씩 들어있어서 그렇다. 매번 사던 건담들처럼 뭐가 한 무더기 가득 들어있진 않지만 반대로 가지고 노는데 필요한 부품들은 다 들어있는 것 같다. 로봇이 아닌 인물 피규어를, 그것도 움직일 수 있는 물건을 가져본 일이 처음이라 사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이것 저것 포즈를 잡고 가지고 놀아봤다.
△ 재떨이를 무대로 썼는데 괜찮다. 하나 더 사서 검게 칠하든지 해야겠다.
포즈는 잘 잡히는데 평소 건담들 가지고 놀던 습관대로 놀기는 좀 어렵다. 건프라처럼 속이 비어있지 않다보니 크기에 비해서 무게가 무겁다. 그런데 발바닥은 건담들처럼 넙데데 하지 않아서 중심 잡기가 조금 힘들다. 그러나 관절들은 꺾일 만큼 꺾여주고 어지간한 자세는 잡을 수 있을 만큼 유연하니까 라이브 공연 보면서 괜찮은 포즈를 잡아보면 될 것 같다. 그냥 멋진 모습만 찍기는 좀 아쉬워서 자세 잡느라 고생한 김에 장난을 좀 쳐봤다.
△ 너무 일찍 떠나버려서 미안하다아아아아아아악!!!!!
△ 헠헠 아이쨩은 사랑입니다.
프레디 머큐리가 동성애자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실제론 양성애자라던데 사진 잘 찍어놓고 프레디가 여자를 좋아하긴 했나? 하면서 잠깐 고민하다가 찾아보고 양성애자인걸 알았다. 뭐 양성애자든 동성애자든 여자든 남자든 시노자키 아이는 사랑이니까 괜찮다. 저 가슴의 거대한 박애주의 앞에 굴복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나. 참고로 물건너 일본쪽에서는 입을 벌리고 있는 머리가 하도 표정이 괜찮다보니 그걸 이용해서 이것저것 장난을 치는 모양이다.
△ 찾아보니 같은 시리즈로 마이클 잭슨이 있다. Smooth Criminal에 등장한 모습.
잘 나온 피규어다. 컴퓨터 본체 위에 뭐 올려두는게 싫어서 잔뜩 늘어놓지 않으려 했는데 전시공간 중에 제일 눈에 띄는 곳이 그 자리라 거기에 올려두었다. 가격도 피규어 치고는 싼 편이고 자세 잘 잡히고 프레디 얼굴도 닮게 나왔다. 이만하면 깔래야 깔게 없는 물건이다. 가지고 놀다 보니 퀸의 음악이 그리워졌다. 글은 여기서 마치고 그의 목소리를 들으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