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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정의 본문
보통의 경우, 숨을 쉰다는 사실을 굳이 떠올리며 살지 않는다. 그러나 숨은 항상 쉬고 있다. 결정이란 것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 자체가 삶의 순간 순간에 매양 따라오는 것인데도, 우리는 그 사실을 잊고 만다. 마트에 가서 진열된 케찹을 카트에 담을 땐 '집어들기 편하다'라는 기준이 작동하며 맨 앞의 물건을 담는 결정을 하고, 우유를 고를 땐 '유통기한이 더 길다'라는 이유로 진열대 안쪽의 물건을 살펴보는 결정을 한다.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는다는 행동의 형식 자체야 동일하지만 그 기준은 상품의 종류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상에서의 작은 '결정'들은 그 중요도가 그리 높지 않기에 우리는 '결정'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1
조금 더 복잡한 결정을 할 때 인간의 지성은 어떤 식으로 작동할까 생각해 보았다. 이를테면 정치, 투표등의 문제에 대해서 말이다. 정치와 투표는 '네 생각에 무엇이 더 정의로운가'를 묻는 시험 문제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웃기게도 시험과 다르게 선택의 순간엔 별다른 압박을 받지 않지만, 답이 틀릴 경우 우리는 꽤 오랜 시간 크게 고통받는다. 시험 문제 한 둘 틀리는 수준의 대수롭잖은 일보다 훨씬 심각하게 말이다. 이 점은 지난 정권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을 통해 충분히 증명되었다. 더 골아픈 건, 이 시험 문제에 정답따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자가 믿는 정의(正義, Justice)란 사람의 숫자만큼 존재할테고, 무엇이 더 정의로운지에 대해 정의(定義, Definition) 내리긴 쉽지가 않다.
△ 조희연 교육감이 믿는 정의로움은 여성 할당제인가보다.
조희연 교육감이 트위터에 글을 하나 올렸다. 여성 할당제를 통해 세상이 더 정의로워질 것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뭐 여기까지야 개인의 신념으로 치부할 수 있다. 다만, 조건이 하나 붙는다. 타인에게 스스로의 정의를 강요하기 위해선, 나에게도 그 정의를 강요해야 공평하다는 점이다. 타노스는 손가락 튕기기로 전 우주 생물체의 절반을 날릴 때 자신을 예외로 두지 않았다. 나는 조희연 교육감에게 묻고 싶다. 본인이 단순히 '남성'이라는 이유로 선거에서 패배한다면 이 또한 정의로운 결과물이라며 납득하고 상대 후보에게 진심어린 축하를 건낼 수 있을지 말이다. 2
△ 민주당이 믿는 정의는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솔직히, 본인들조차도 잘 모르는 건가 싶기도 하다.
민주당은 당헌당규에 아예 여성할당제가 포함되어 있는 정당인데도, 최고위원 할당제를 안하고 넘어가려다 맹비난 받고 결국 재논의 끝에 부활시켰다. 조희연이 민주당 소속도 아닐뿐더러 민주당과 딱히 정치적인 연계를 보여주지도 않았지만, 진보 진영에 속해있다는 평을 받는 교육감이고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의원에게 맹폭격을 받았던 전적이 있는 만큼, 한 편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진 않을 것이다.
시기도 많이 차이나는 일이고, 민주당과 서울시 교육청이 독립된 단체이니 굳이 양 집단의 일관성 없음을 싸잡아서 깎아내리는 것은 약간의 무리수가 있는 것을 인정한다. 허나 조희연 교육감 본인도, 민주당의 사람들도 자신의 밥그릇을 포기하면서까지 정의로움을 쫓을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어버리니 참 난감하다.
스스로도 믿지 않는 신념을 남에게 강요해서 무엇하겠는가.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정의로움이라는 가면을 쓰고 위선을 강요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게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도, 가치가 있다면 본인 스스로들의 밥그릇부터 내려놓을 자신이 있는지도 묻고 싶다.
△ 마지막 궁금증. 이 짤과 여성할당제의 차이점에 대해 저에게 설명해주실 수 있는 분을 찾습니다.
아 마지막으로 사족 하나.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총선을 1년 반 앞둔 이 중대차한 시기에 업적도 당내 세력도 없이 당선된 당신에게 얼마나 많은 비난이 쏟아지며 자유한국당이 내홍에 빠질지 생각하면 오라클을 집어삼킨 스미스 요원처럼 광소가 터져나온다. 마침 당신은 진보진영에서 그리도 좋아하는 '여성'이기도 하다.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