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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멍청함 본문
이종걸 원내대표를 고깝게 보았던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렇다. 문재인 당대표 체제에서 이래저래 잡음을 많이 일으켰던 사람이기도 하고, 안철수를 위시한 일련의 탈당 사태에서 원내대표 다운 책임감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런데 저 사람의 무제한 토론을 보며 이제사 깨닫는다. 안철수는 원래 답이 없는 사람이었고, 민주주의는 원래 시끄러운게 정상이라는걸.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면 그건 그거대로 이상할 노릇이겠지. 사람이 몇 명인데 다 같을리가 있겠나. 그게 민주주의다. 시끄럽고, 편하지 않고, 비효율적이고, 느리다. 하지만 옳다. 옳기 때문에 존속될 수 있었다.
저 남자는 열두시간이 넘는 긴 시간동안 젊지 않은 나이에 지쳐가는 몸을 달래며 자신의 신념을 토해냈다. 편한 신발을 신을 수 있었지만 끝까지 구두를 고집하며 예의를 갖추었다. 눌변으로 저평가받던 화법 마저도 그의 진심을 온전히 가져다주는 무기가 되었다. 노무현 이후로 정치인의 말에 울컥할 일은 잘 없을 것 같았는데, 그의 무제한 토론이 12시간을 채웠을 무렵 나왔던 딱 한마디가 정말 큰 울림을 가져다 주었다. 잊지 않기 위해 쓴다.
어떻게 된 일인지 점점 정신이 맑아집니다. 쓰러질래야 쓰러질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역시 쉽게 변하지 않는다. 당 지도부나 비대위원들이 죄다 경선 없이 공천 받는 와중에 새누리당은 민주당보다도 경선을 더 많이 치룬다. 이게 무슨 개지랄인지 씨발. 그래 내가 멍청한건 맞다. 고작 12시간의 연설에 이종걸 원내대표가 그간 저질러온 악행을 용서한 내가 멍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