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생각 (61)
SWEV
20대 시절에 누군가 정치적 성향을 물으면 진보 성향에 가깝다고 이야기 하곤 했다. 그때는 단어 하나에 함축된 복잡한 뜻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만큼 내 생각이 깊지도 못했고, 딱히 그렇게 말하는 것이 나에게 흠결이 되던 분위기도 아니었기에 부담없이 진보라는 단어를 꺼낼 수 있었던 시기니까. 그런데 요즘 누군가 나에게 정치 성향을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생각이 많아진다. 예전처럼 생각없이 진보라고 논하기엔 진보진영이 너무 바보같은 짓을 많이 했고, 반대로 보수라고 말하면 새누리당 처럼 보수라고 말하기 곤란한 집단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게 싫어서다. 보수는 현재의 가치를 지키려 드는데 새누리는 이제껏 쌓아온 상식을 파괴하고 나라를 후퇴시키고 있지 않나. 제 자리에 있길 바라는게 보수인데 뒤를 향해 걷고..
농구공보다 커다란 총천연색 생쥐가 사람의 말귀를 고스란히 다 알아듣는데다가 양 볼에 찍어놓은 연지곤지에서는 100만 볼트가 쏟아져 나온단다. 100만 볼트가 말이 100만 볼트지 전기 뱀장어도 1000볼트 고작 나오는 마당에 이놈들은 도대체 뭘 먹여 키웠길래 저렇게 되는 건가. 그리고 사람 말을 다 이해 한다는 것은 생각 할수록 무섭다. 동물이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가진 건 영화에서 대부분 무섭게 표현되지 않던가. 이를테면 영화 혹성탈출처럼 말이다. 무슨놈의 설치류가 이리도 살벌한 스펙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열살 남짓 되어보이는 어린애가 생전 학교는 안다니고 방랑하면서 동물들하고 살부비며 산다. 뭐 저것 자체는 나쁜 일이 아니라 오히려 좋다면 좋은 일일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동물들 가..
처음으로 몸과 마음을 모두 써가며 여자와 사랑을 나눠 본 게 스물 두 살 때의 일이다. 어지간하면 엄마한테 숨기는 일이 없는 편이지만 잠자리와 관계된 이야기는 숨겨야 할지 말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몇 달간 고민하다가 내 삶에서 중요한 변화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무래도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았고, 결국 TV를 보던 엄마 옆에 앉아 할 수 있는 한 가장 조심스러운 단어를 골라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말씀이 없으시던 엄마는 잠깐 뜸을 들인 뒤 어마어마한 대답을 들려주셨다. "엄마, 나 이제 총각이 아니야.""그래서?" 엄마의 반응이 너무나도 쿨해서 말문이 턱 막혔다가 간신히 한 마디 다시 꺼냈다. 그리고 또 엄청나게 충격적인 대답을 들었다. "아니 엄마, 내 일신상의 중요한 변화라서 엄마한텐 이야길 꼭..
몸에서 느껴지는 이런 저런 감각들은 고스란히 살아있는데, 그걸 받아들이고 처리해야 할 운영체제가 다운되는 느낌이었다. 아주 느리게 슬로우 비디오처럼. 보통 컴퓨터가 다운되는 일은 갑작스레 벌어지기 마련이지만, 웃기게도 사람의 몸이 컴퓨터보다 훨씬 복잡하다 보니 다운되는데도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는거. 뭐 컴퓨터도 달린게 많으면 켜지고 꺼지는 속도가 느려지니까 그러려니 한다. 생각의 속도가 느려지면서 말 자체도 느려졌고 만화나 영화에 나오는 것 처럼 뿅가고 홍콩 갈 것 같은 느낌은 한 톨도 없었다. 아무튼 생전 인연이 없을 것 같았고 별다르게 관심도 없던 마약을 아주 우연한 기회에 내 의지와 관계없이 겪었다는 것이 핵심. 지난 주 금요일인가 목요일에 갑자기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단순한 소화불량..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시킬 수 없다' 라는 말이 도대체 왜 메갈리아에 한해서는 쓰이지 않는 걸까? 진보진영이 그간 숱하게 써온 프레임이자 사회의 공동선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가치이지 않았나. 여권 신장이라는 목적을 위해 남혐과 패드립이라는 수단을 써도 된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고 합의한 게 아닌데도 정의당과 한경오는 메갈리아를 편들고 있다. 그간 그들이 부르짖던 정의와 상식은 온데간데 없다. 그리고 나는 이 현상이 진짜로 신기하다.
밀키스는 1,000원이고 암바사는 1,100원 이었다. 마침 지갑속엔 딱 1,000원짜리 한 장이 들어있어서 밀키스를 샀다. 평소 같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이다. 롯데, 남양, 팔도의 제품들을 가능하면 사지 않으려 마음먹고 있기에 초코에몽 맛이 궁금해 미치겠으면서도 사지 않았고, 팔도 비빔면이 최고인걸 알면서도 울며 겨자먹기로 삼양 갓비빔을 사먹곤 했다. 항상 정의롭게 살 수야 없겠지만 내가 감당 가능한 범위 내에서는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해 내 피곤과 수고로움을 견디고 싶었다. 나에게나 세상에게나 그것이 더 옳을 것 같았다. 근데 고작 100원에 그 원칙이 깨졌다. 피곤하고 귀찮았던 게 원인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보니 내 양심과 인내의 가격이 고작 100원인것 같아 기분이 나빠졌다. 이젠 그러지 ..
정의당이 심상정 원맨팀 같이 느껴져서 이게 결국 박근혜의 보스정치랑 뭐가 다른가 싶을 때가 많았다. 그래도 심상정을 마음속이나마 응원했다. '리더가 절대적으로 선(善)하다면, 독재는 용서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국정감사 기간 동안의 심상정은 그런 기대를 걸어도 될만한 사람 같았다. 적어도 그때는 그랬다. 국정감사 이후 대충 1년 즈음 지난 것 같은데 절대선은 온데간데 없고 혐오주의와 폭력에 동조하는 심상정이 남았다. 4월에 고민 끝에 비례대표에 정의당을 찍었다. 그리고 지금 정의당의 모습을 보니 입맛이 쓰다. 진영논리에 매몰되거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진 평범한 생각을 읽지 못하는 일은 없길 바랐건만, 너무 큰 기대였나보다. 심상정이 보스라 할만큼 정의당에서 큰 권력을..
잘 쓰던 밥솥이 죽었다. 16800원 주고 사서 4년 가까이 밥을 잘 지어주면서 충분히 제 몫을 다해준 물건이다. 사실 지금도 신기하다. 도대체 밥솥이 20,000원도 안하는게 말이 되나. 남으니까 내다 팔겠지만 그래도 신기한 건 매한가지다. 중국 공장에서 나오는 원가는 $10 정도 되지 않을까. 유통마진이나 물류비 이것저것 고려하면 대충 그 즈음일 것 같다.. 왼쪽이 죽은 밥솥이고, 오른쪽이 새로 산 밥솥이다. 배송료 포함해서 20,000원 줬다. 예전 물건과 마찬가지로 압력기능도 없고 IH방식도 아닌 가장 싼 밥솥 중 하나다. 내가 고슬고슬하고 물기가 많지 않은 밥을 좋아하기 때문에 밥솥에 돈을 많이 쓰지 않아도 된다. 웃기게도, 저런 싸구려 밥솥을 쓰면 본의 아니게 부지런해진다. 밥솥의 밀폐가 형편..
어떤 이야기든 시작과 끝이 있기 마련이다. 그 시작과 끝 사이에 다른 무언가를 얼마만큼 야무지게 끼워 넣는지에 따라 공감과 감동의 크기가 달라진다. 그리고 록키 시리즈는 한 복서의 데뷔와 은퇴를, 그러니까 시작과 끝을 이야기 하는 영화이다. 록키 시리즈의 메시지는 딱 세 글자면 온전히 표현 할 수 있다. '버텨라.' 록키라는 복서의 삶을 통해 저 세 글자를 길게 늘려 6편의 영화에 꽉꽉 채워넣었다. 중간에 부침도 있었고 시대적 배경이 엉뚱한 곳에 녹아들었던 적도 있지만, 최후의 이야기인 록키 발보아에서는 너무나도 근사하고 훌륭하게 마무리 됐다. 잘난 것 없는 주인공의 성장기와 극복기라는 단순한 줄거리를 가지고도 이 만큼의 감동과 눈물을 짜낼 수 있는 영화가 몇이나 되겠나. 손석희 앵커의 말처럼 '하면 된..
땅이나 건물을 파는 플랜카드에 '주인 직접'이라는 단어가 쓰여있는 것을 자주 보았는데, 난 여태까지 그게 건물주가 직접 벽돌을 날라가며 하나하나 지었거나 농사 짓던 땅을 판다는 뜻인 줄 알았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했던 이유는 순전히 집안 분위기 탓인데, 우리집은 AS 기사를 부를 일이 인터넷 신청할 때 빼고는 거의 없다. 어지간한 가전기기는 아부지와 나 둘이서도 충분히 잘 고치는데다 전기공사나 비데 작업 같은 것들도 사람을 부르는 것이 귀찮아 직접 해버릇 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삼촌들은 집을 짓거나, 엘리베이터를 자작하거나 스쿠터를 만들어서 타고 다니니 내가 저런 엉뚱한 생각을 했던 건, 어릴적부터 자력갱생을 착실하게 학습한 결과물일 뿐이다. 집을 짓는게 취미로 삼을 만큼 만만한 일이 되었나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