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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V
잘 쓰던 밥솥이 죽었다. 16800원 주고 사서 4년 가까이 밥을 잘 지어주면서 충분히 제 몫을 다해준 물건이다. 사실 지금도 신기하다. 도대체 밥솥이 20,000원도 안하는게 말이 되나. 남으니까 내다 팔겠지만 그래도 신기한 건 매한가지다. 중국 공장에서 나오는 원가는 $10 정도 되지 않을까. 유통마진이나 물류비 이것저것 고려하면 대충 그 즈음일 것 같다.. 왼쪽이 죽은 밥솥이고, 오른쪽이 새로 산 밥솥이다. 배송료 포함해서 20,000원 줬다. 예전 물건과 마찬가지로 압력기능도 없고 IH방식도 아닌 가장 싼 밥솥 중 하나다. 내가 고슬고슬하고 물기가 많지 않은 밥을 좋아하기 때문에 밥솥에 돈을 많이 쓰지 않아도 된다. 웃기게도, 저런 싸구려 밥솥을 쓰면 본의 아니게 부지런해진다. 밥솥의 밀폐가 형편..
맥북에어의 충격적인 데뷔 이후로 노트북들이 얇게, 가볍게 변해간 것은 분명히 좋은 일이다. 그런데, 무게 보다는 성능에 목을 멘 사람들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줄어드는 것을 마냥 달가워 할 수가 없다. 몇 년 전만 해도 노트북 CPU들은 30W 전후의 소모전력을 가진 모델들이 주류였고 15W급의 소모전력을 가진 CPU들은 저전력 등급으로 분류되어 휴대성을 강조하고 성능을 어느 정도 포기한 라인업에만 들어갔다. 그런데 요즘 노트북 시장의 주류는 누가 뭐래도 울트라북이고 울트라북엔 보통 15W급 CPU들이 들어간다. 이 유행을 거스를만한 힘을 가진 회사는 사실상 없었고 저전력 CPU들도 충분한 고성능을 달성하고 나니 이젠 30W급 CPU가 달린 노트북 자체가 드물다. 결국 고성능을 바라는 사람은 각 제조사..
PG 유니콘은 별 기대가 없다가 순전히 희성이형 괴롭히려고 사게 만든 뒤, 내가 만들었다. 유니콘 건담 참 좋아하고 개중에서도 각성 상태의 유니콘 디자인과 배색은 정말 최고라고 생각하는데, PG 각성 유니콘은 그야말로 '쩐다'. 관절 설계가 잘못돼서 흐느적거리고 자세를 도무지 잡을 수 없는데다 다리가 이상하게 길어서 괴물같이 보이는 MG와 달리 프로포션이 딱 좋게 나왔다. 적당히 굵고 긴 팔다리가 멋지다. 그리고 PG쯤 되면서 의외의 장점이 또 하나 생겼다. 프라모델은 금형에 열에 의해 녹은 상태의 플라스틱 액체를 채워넣은 뒤 식혀서 굳어지며 만들어지는데, 금형의 모서리 부분을 너무 직각에 가깝게 빡빡 세워놓으면 그 부분에 기포가 차면서 미성형 불량품이 나오거나 높은 사출압으로 뿜어져 나오는 플라스틱 용..
CPU나 VGA처럼 전기를 많이 먹는 반도체 부품들은 스펙에 항상 TDP라는 수치가 따라붙는데, 잘 와 닿는 개념이 아니다 보니 헷갈려 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 쓴다. TDP라는 말은 Thermal Design Power의 줄임말이다. 한국말로 번역하면 '열 설계 전력' 정도가 되겠다. 한국말로 번역해도 썩 매끈한 느낌이 없다. 뭐 공학 용어가 흔히들 그러하니까 이제와서 문제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전공서적을 보아도 빛알 같은 단어가 튀어나오는데 '열 설계 전력' 정도야 애교 수준이지 않나.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기초를 알아야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으니 짧게나마 설명을 하면서 시작한다. △ 호스의 물줄기는 언제나 수도꼭지만큼 세차지 않다.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시원스럽게 쏟아져 나온다. 그..
어떤 이야기든 시작과 끝이 있기 마련이다. 그 시작과 끝 사이에 다른 무언가를 얼마만큼 야무지게 끼워 넣는지에 따라 공감과 감동의 크기가 달라진다. 그리고 록키 시리즈는 한 복서의 데뷔와 은퇴를, 그러니까 시작과 끝을 이야기 하는 영화이다. 록키 시리즈의 메시지는 딱 세 글자면 온전히 표현 할 수 있다. '버텨라.' 록키라는 복서의 삶을 통해 저 세 글자를 길게 늘려 6편의 영화에 꽉꽉 채워넣었다. 중간에 부침도 있었고 시대적 배경이 엉뚱한 곳에 녹아들었던 적도 있지만, 최후의 이야기인 록키 발보아에서는 너무나도 근사하고 훌륭하게 마무리 됐다. 잘난 것 없는 주인공의 성장기와 극복기라는 단순한 줄거리를 가지고도 이 만큼의 감동과 눈물을 짜낼 수 있는 영화가 몇이나 되겠나. 손석희 앵커의 말처럼 '하면 된..
컴퓨텍스에서 케이스는 볼 만한 물건이 딱히 없어서 아쉬웠는데, eVGA에서 좀 묘한 물건이 나와서 간략하게 소개차 글을 쓴다. 이 사진을 보면 그냥 예쁘게 잘 뽑혀 나온 디자인만 보인다. 사진만 봐서는 크기가 잘 안 와닿을 수도 있는데, 4Way SLI나 4Way CrossFire에 대응되는 고성능, 대형 케이스다. eVGA는 한국에 정식으로 판매중인 브랜드가 아니다보니까 묘하게 소비자들의 마음을 자극하는 환상의 브랜드 같은 느낌이 있는데, 솔직히 말해서 선망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는 좋은 회사라고 생각한다. 제조사의 커스텀 쿨러가 달린 VGA들 중 몇 안되게 볼베어링 팬을 사용하여 내구성에 투자를 했던 점도 멋지고, SR 시리즈 메인보드 같이 다른 회사들은 시도하지 않는 실험적 제품들을, 모나거나 모자라..
얼마전 종료된 컴퓨텍스 2016에서 CEO인 리사 수 회장이 직접 나와 AMD의 새로운 CPU 아키텍쳐인 ZEN과 그 데스크탑용 제품인 Summit Ridge에 대해 이야길 했다. ZEN의 성능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이 오갔지만, 명확하게 실체가 없었고 여지껏 AMD는 제품 출시 전까지 성능에 대해 밥먹듯이 뻥을 쳐댔기 때문에 사람들도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지 않았다. 기억에 남은 것 중 가장 바보같이 느껴졌던 것이 제품 개발 코드명 Barcelona의 성능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인콰이어러에 바르셀로나는 인텔을 죽여버릴 것이다 라고 잘도 떠들었지만 실제로 시장에 출시되고 나서 살펴보니 끔찍한 성능과 치명적인 버그가 뒤섞인 엉망진창의 제품이었다. 인콰이어러가 저 시절엔 뻥콰이어러 소리 들으면서 자극적..
땅이나 건물을 파는 플랜카드에 '주인 직접'이라는 단어가 쓰여있는 것을 자주 보았는데, 난 여태까지 그게 건물주가 직접 벽돌을 날라가며 하나하나 지었거나 농사 짓던 땅을 판다는 뜻인 줄 알았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했던 이유는 순전히 집안 분위기 탓인데, 우리집은 AS 기사를 부를 일이 인터넷 신청할 때 빼고는 거의 없다. 어지간한 가전기기는 아부지와 나 둘이서도 충분히 잘 고치는데다 전기공사나 비데 작업 같은 것들도 사람을 부르는 것이 귀찮아 직접 해버릇 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삼촌들은 집을 짓거나, 엘리베이터를 자작하거나 스쿠터를 만들어서 타고 다니니 내가 저런 엉뚱한 생각을 했던 건, 어릴적부터 자력갱생을 착실하게 학습한 결과물일 뿐이다. 집을 짓는게 취미로 삼을 만큼 만만한 일이 되었나 하..
지포스 GTX 1080이 출시되었고 전 세대의 GTX 980대비 꽤 많이 빨라졌기에 사람들이 환호하고 있다. 그 김에 그냥 궁극의 게이밍 견적을 짜봤다. 내가 쓰는 글이 늘상 그렇듯 실생활엔 하나도 도움 안되지만 보면 심심함은 덜어질테니 그냥 머리 비우고 보면 된다. 예전에 짜놓은 사진 견적 PC야 성능상 더 나은 견적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 게이밍 견적은 성능이 더 나올 조합은 잘 없다고 보아도 좋다. 메인기어같은 고성능 커스텀 데스크탑 업체에서 오버클럭 된 상태로 출시된 완제품이라거나 액체질소 혹은 커스텀 수랭, 펠티어 같은 특수한 셋팅 없이 나올 수 있는 성능의 총합은 이 견적에서 가장 높을 것이다. 다시 말해 각 부품의 공장 출하 기본 상태에서 가장 높은 게임 성능이 나오는 것들만 ..
존댓말로 글을 써야 할 일은 없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모자란 생각으로 쓴 글이 결국엔 문제가 되었네요. 화가 나서 휘갈겨 쓴 글 말고, 생각의 정리의 글이 하나 쯤은 필요하겠다 싶어 따로 글을 적습니다. 요 근 10년간 수도 없이 많은 사건 사고들이 있었지만, 세월호 만큼 사람들에게 큰 고통과 슬픔을 줬었던 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2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고 제 마음속에 마지막으로 남은 생각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분노'입니다.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들 수백명이 아무런 이유 없이 떠나야만 했던 일에 대한 분노요. 국가의 존재에 대한 회의,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었던 저 스스로의 무력함에 대한 울분, 그 외에 이런 저런 감정이 합쳐져서 최종적으로 나온 결과물은 분노입니다. 타인의 아픔에 대한 공감과..